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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uth forever with the Phoenix Journals
Truth in History

나치의 전후 활동과 히틀러의 마지막 대대

by - phoenix - 2020. 6. 20.

[‘아는 자[One Who Knows]’라는 필명을 썼던 캘빈 버긴[Calvin Burgin]의 글,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으로부터 인용된 내용으로 ‘히틀러의 탈출 경로’에 이어지는 부분--phoenix]

 

 

제 7장, 기록 #3 하톤

1995년 12월 8일 금요일, 3:23 P.M. 9년 114일

 

[인용]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 Part V No. 7[Fire From the Sky, PART V #7]

by “아는 자[One Who Knows]”

 

누가 원자폭탄을 만들었나?

 

맨하탄 프로젝트[the Manhattan Project]의 안보 책임자였던 보리스 패쉬[Boris Pash]와 과학자 사무엘 구드스미트[Samuel Goudsmit]는 독일 핵실험실을 찾아 파리와 독일 각지를 수색하는 탱크들을 뒤따랐으며,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에서 결국 이를 발견해 냈다. 이 작전은 알소스 작전[the Operation Alsos]이라 불렸다. (‘알소스’는 그리스어로 ‘작은 숲[Groves]’을 의미한다.--저자) 피터 굿차일드[Peter Goodchild]는 ‘세계를 깨뜨리는 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Shatterer of Worlds]’라는 자신의 책, p.1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독일 기술 발전의 큰 그림은 곧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42년 히틀러에게 핵 무기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고, 이후 일련의 우라늄 실험들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심지어 1944년 8월말에도 관련 실험들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인들은 연쇄적인 폭발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도, 그 메커니즘도 알지 못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명백히 1942년 이래로 거의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워싱턴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두 명은 구드스미트의 마지막 보고서를 읽었을 때, 관련 정보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알려졌던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보고서를 믿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실제로는 핵 폭탄을 개발했으나, 연합군이 이를 비밀에 부쳤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이젠베르크의 전쟁[Heisenberg’s War]’ p.481에 보면, 베네버 부시[Vannervar Bush]가 1949년 6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인용되어 있다. : “나치는 핵폭탄을 원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만큼이나 좋은 기회가 있었다. 1945년까지 긴장이 흐르던 시기에,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막상막하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그들이 우리보다 6개월 정도 앞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슈투트가르트가 함락되고, 알소스 작전이 완수되었을 때, 우리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나치는 심지어 첫 번째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놀랍고도 놀라운 언급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쩌면 거짓말 중의 거짓말은 아닐까?

 

증거에 입각한 나의 가장 확실한 추측은 독일이 핵 폭탄을 개발해 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미국은 독일 과학자들 가운데 일부를 1945년 초에 사로 잡았으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은 독일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의 흥미로운 진술에 설명력을 더해 준다.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탈출했을 때, 폭탄 몇 개를 가지고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호송 잠수함 부대는 핵 폭탄으로 보호되었으며, 하이점프 작전을 중단시켰던 것 또한 핵 무기가 아닐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건 단지 추정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독일로부터 “폭탄”을 입수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크리스토퍼 심슨[Christopher Simpson]의 책, “블로우백[Blowback] : 미국의 나치 인물들의 고용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설명과 이것이 우리의 국내 및 국외 정책에 미친 재앙적인 효과”라는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1945년 7월 6일, 합참의장[Joint Chiefs of Staff(JCS)]은 오버캐스트[Overcast]라는 작전명을 가진 일급 비밀 프로젝트 아래, ‘우리가 이용하기를 원하는, 끊임없는 지적 생산성을 지닌, 선택된 소수의 인물들을 활용하는 것’을 분명히 허락했다... 이러한 일은 무엇보다도 독일 과학자들이 일본과의 계속되는 전쟁에 있어서 이용 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연합군이 독일 핵 폭탄 실험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이것이 단지 동굴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콘크리트 원자로일 뿐이며,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그들은 이 독일 과학자들이 일본을 패배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상당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을 사로 잡는 일급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는 말인가? 톰 어고스턴[Tom Agoston]은 ‘대실수![Blunder!]’라는 책에서, “연합군 과학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독일은 2톤에 달하는 중수[heavy water] 뿐만 아니라, 2톤 분량의 우라늄-235를 비축해 둘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윌리엄 스티븐슨[William Stevenson]은 ‘두려움을 모르는 자라 불리던 남자[A Man Called Intrepid]’라는 책에서, “독일은 폭탄의 기초를 이루는 이론적 연구를 수행한 인물(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1939년 전장에서는, 이러한 조각들을 결합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가진 나라는 바로 독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자, 이제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원자 폭탄은 독일인들의 아이디어였으며, 그들은 최고의 과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진보된 무기들을 개발해 낼 수 있는 역량도 입증해 보였으며, 풍부한 원재료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폭탄”이 단지 교회의 창고로 사용되던 언덕 위 동굴 속의 방사성 콘크리트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인가? (‘하이젠베르크의 전쟁’, p.421) 독일의 실험실이 발견된 건 1945년 4월 21일이며, 3개월 후인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르도[Alamogordo]에서 핵실험이 있었다. 그리고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Oakland, California]에서 있었던 핵 실험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단지 우리가 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인가?

 

알소스 작전에서 패쉬와 구드스미트는 수 톤 분량의 우라늄을 손에 넣게 되었으며, “이 우라늄들은 영국으로 운송된 다음, 다시 미국으로 운송되었다. 테네시주 오크리지[Oak Ridge, Tennessee]에서 이 우라늄들은 동위원소 분리를 위해 우라늄 육불화 가스[uranium hexaflouride gas]로 변형되었으며, 마침내 히로시마를 파괴시키는 데 사용된 우라늄-235가 만들어졌던 것이다.”(‘하이젠베르크의 전쟁’, p.362.)

 

2차 세계 대전 동안 비밀로 분류되었던 대부분의 문서들은 ‘미 정보 자유화 법’의 조항들에 따라 순차적으로 비밀이 해제되어 왔다. 톰 어고스턴은 알소스 작전에 관한 정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대실수!’, p.124). : “비밀 분류 규정에 따른 3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관련 파일들을 여전히 비밀로 묶어 두고 있다. 그 이유는 40년이 넘게 미스터리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캄믈러 장군[General Kammler](‘히틀러의 탈출 경로’ 참조--역주)에 대한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의 증언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관련 문서들은 정상적인 30년 분류 규정을 훨씬 넘어 계속 비밀로 남아 있을 것이며, 어쩌면 2020년까지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캄믈러는 전쟁 직후 사라졌으며,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에 관해서는 4가지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저자). 그가 만약 죽었다면, 왜 계속 비밀로 분류되는 것인가? 캄믈러는 “독일 내각 밖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명령 체계는 히틀러에서 힘믈러로, 힘믈러에서 힘믈러의 부관이자 나치 친위대 장군이었던 칼 볼프[Karl Wolff]로, 칼 볼프에서 또 다른 나치 친위대 장군이었던 오스발트 폴[Oswald Pohl]로, 오스발트 폴에서 캄믈러로 이어졌다. 나중으로 갈수록 명령 라인은 보다 직접적으로 바뀌어 갔다. 빌헬름 보스 박사[Dr. Wilhelm Voss]는 어고스턴에게 말하기를, 캄믈러에게 발생한 일은 결코 밝혀질 수 없는 “뜨거운 감자”라고 했다. 어고스턴은 캄믈러의 최측근 중의 한 명이었던 루돌프 헤스[Rudolph Hess]가 1941년 5월 비밀 임무를 띠고 영국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헤스가 왜 영국으로 갔던 것인지를 설명하는 영국 비밀 문서는 2020년까지 비밀로 남아 있을 것이다”(p.160).

 

내가 관련 증거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던 시점은 맨하탄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한 피닉스 저널 제 18권(‘피와 재[Blood and Ashes]’)을 읽었을 때였으며, 이 책 p.159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물론 그들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것을 사용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용된 폭탄은 실제로는 독일에서 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저널들의 저자는 “아는 자[One Who Knows]”이다.(‘하톤’을 지칭--역주)[하톤: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의 저자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남대서양의 독일 잠수함들

 

프랑스 신문인 ‘프랑스 수아[France Soir]’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 “유럽에서 교전 행위가 종료된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포경선 “줄리아나”는 거대한 독일 U-보트를 만나게 되었다. 독일 잠수함이 수면 위로 올라와 독일 공식 해군 애도기--검은 띠를 두른 붉은 깃발--를 올렸을 때, 줄리아나는 말비나스[Malvinas] 섬(오늘날 포클랜드 섬--저자) 주위의 남극 지역에서 포경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잠수함 선장은 몇몇 인원을 태운 고무 보트를 보냈으며, 보트가 포경선에 근접했을 때, 그들은 헤클라 선장[Capt. Hekla]에게 신선 식품을 요구했다. 요구는 단호한 톤의 명령에 가까웠으며, 저항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독일 장교는 정확한 영어를 사용했고, 건네 받은 식량의 대가로 미 달러를 지불했다. 줄리아나호 승무원 전원에게 돈을 주었으며, 선장에게는 보너스 10달러를 더 건넸다. 음식물이 잠수함에 전달되자 잠수함 선장은 헤클라 선장에게 고래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중에 줄리아나호가 실제로 그 곳에 접근하자 한 무리의 고래 떼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 AFP[Agence France Press] 통신은 1946년 9월 25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남미 대륙의 최남단인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독일어로, 포이어란트[Feuerland]--저자)와 남극 대륙 사이의 지역에서 생겨나는 독일 U-보트의 활동들에 대한 계속되는 소문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근거한다.”

 

독일인들이 달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설명의 일환으로, 독일이 미 화폐를 위조하거나 혹은 달러 인쇄판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룬 이야기와 책들이 있어 왔다.

 

기네스북은 “해결되지 않은 최대의 강탈 사건”으로 전쟁 직후 독일 국고[German treasury] 전체가 사라진 사건을 꼽고 있다.

 

랜드 연구소

 

1946년 1월, 기업가인 도널드 더글라스[Donald Douglas]는 미 공군에게 정부와 기업이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함께 협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것이 랜드 프로젝트[Project RAND]였으며, 그 명칭은 아서 레이먼드[Arthur Raymond]가 ‘연구 및 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에서 따온 것이었다. 첫 번째 정부 지원금의 상당 부분은 폰 브라운 박사 팀에게 돌아갔다. (맥두걸[McDougall], 월터[Walter] 등, ‘하늘과 땅, 우주 시대의 정치사[the Heavens and the Earth, A political History of the Space Age]’, 베이직 북스[Basic Books], 뉴욕, 1985. p.89.)

 

레슬리 R. 그로브스[Leslie R. Groves]

 

그로브스는 원자 폭탄을 만든 맨하탄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브스가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그가 펜타곤[Pentagon] 건설 감독자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1942년까지 미국의 모든 군사 시설 건설에도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이후 그는 레밍턴 랜드사[Remington Rand Corporation]로 자리를 옮겼다.

 

보리스 패쉬[Boris Pash]

 

“독일의 과학 발달 수준을 알아내기 위한 수색은 판돈이 크게 걸린 내기와 같았다. 예를 들어 단일의 가장 중요했던 미국 기동대는 알소스 작전 팀으로, 추축[Axis] 동맹(독일, 이탈리아, 일본--역주)의 핵 연구 수준, 우라늄 비축분, 핵 과학자들, 나치의 생화학 무기 연구 실태 등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작전의 사령관은 미 육군 대령 보리스 패쉬였으며, 그는 이보다 앞서 맨하탄 프로젝트(미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저자)의 안보 책임자이기도 했으며, 나중에도 미국이 수행하는 고도의 비밀 프로그램들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패쉬는 최고 수준의 독일 과학자들을 사로잡은 데다, 7만톤이 넘는 추축국의 우라늄 원광과 라듐 물질들을 손에 넣음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멋지게 수행해 냈다. 이러한 수색 작전을 통해 획득한 우라늄들은 결국 미국으로 보내졌으며, 미국의 원자 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심슨, 크리스토퍼, ‘블로우백’, 콜리어 북스[Collier Books], 뉴욕, 1988년, p.26.)

 

“블러드스톤[Bloodstone] 작전의 또 한 명의 주목할만한 베테랑은 보리스 패쉬로, 그는 ‘암살 계획을 책임졌던 은퇴한 CIA 비밀 작전 책임자의 정보 활동에 관한 1975-1976년 미 상원 최종보고서’에서도 전 생애에 걸쳐 비밀 정보 활동을 수행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블로우백’, p.108).

 

‘블로우백’ pp.152-153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블러드스톤 작전 기록은 오늘날 가장 뜨거운 이슈들 가운데 한 가지 문제에 대한 중요한 새로운 정보들도 담고 있다.--다른 나라 고위 관료들의 암살 또는 암살 시도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보다 구체적으로는 ‘CIA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1976년 상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블러드스톤 작전의 핵심 인물은, CIA가 기획하는 암살, 납치, 또는 이와 유사한 ‘더러운 작업’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책임자로 OPC 장교(정책조정 장교--역주)로 불렸다.”

 

“보리스 패쉬 대령은 미국 정보기관 역사상 가장 특별하면서도 가장 덜 알려진 인물로, 그의 역할은 전후[postwar] 암살 작전들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패쉬 대령은 미 정보기관이 태동했을 때부터 활동해 온 소수의 인물들 가운데 한 명으로,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에 관한 그의 경험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러시아 태생의 선교사였던 자신의 부친과 함께 모스크바와 동유럽 등지에 체류했으며, 젊은 패쉬는 백군의 편에서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각국으로 흩어진 차르 망명자들[Czarist refugees]과 함께 움직이기도 했다. 1920년대 패쉬는 미 육군 정보 기관의 예비역 장교로 등록했으며, 캘리포니아에 있는 일본인 포로 수용소를 관리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러다가 이내 핵폭탄 개발이라는 미국의 일급 비밀 작전인 맨하탄 프로젝트의 방첩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10년도 더 지난 후에 패쉬 대령은 잘 알려진 1954년의 보안 소송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운명을 결정짓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전쟁 이전을 살펴보자면, 패쉬 대령은 나치 독일의 핵 무기 및 화학 무기 전문가들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였던 알소스 작전과 같은 특별 임무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전후 패쉬 대령은 1948년 봄 블러드스톤 작전에서 육군을 대표하게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철의 장막 뒤에서 변절자들을 고용하거나, 망명자들을 밀입국시키거나, 암살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1948년 합참의장의 기록에 따르자면, 국방부가 정의한 블러드스톤의 특별 작전에는 ‘비밀 전쟁 수행, 정부 전복, 그리고 암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49년 3월 패쉬는 미 육군에 의해  CIA 정책조정국[OPC(office of policy coordination) division]에 편입되었다. 그가 지휘했던 5명으로 구성된 CIA 특임 조직은 ‘PB/7’으로 불렸으며, ‘PB/7’의 주된 임무는 암살, 납치였으며, 그 밖에도 때때로 고위층에서 하달되는 다른 임무들을 맡기도 했다.”

 

레오나드 모슬리[Leonard Mosley]가 쓴 책 ‘덜레스[Dulles]’(‘엘리너[Eleanor], 알렌[Allen], 그리고 존 포스터[John Foster]의 전기’, 런던 : 호더 & 스타우턴[Hodder & Stoughton]사, 1978.) p.459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그러나 이제 그(알렌 덜레스[Allen Dulles](1953-61, CIA 국장--역주))는 마인드-왜곡 약물,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담긴 휴대용 약병,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비밀 독극물 등 보다 끔찍한 CIA의 실험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악명 높은 작업들을 수행하는 하부조직이 ‘건강 개조 위원회[the Health Alteration Committee]’(시드니 고트리브 박사[Dr. Sidney Gottlieb]와 보리스 패쉬가 지휘--저자)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알렌 국장은 유머 감각이 있는 작명이라고 생각했다... 관련 계획들의 부 책임자였던 프랭크 와이즈너[Frank Wisner]는 현재 리처드 비셀[Richard Bissell]로 대체되었다.” 패쉬와 고트리브의 마인드 컨트롤과 고문 실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한다면, 고든 토마스[Gordon Thomas]가 쓴 ‘광기로 향하는 여행 : CIA의 비밀 마인드 컨트롤과 의학적 남용에 관한 진짜 이야기’(밴텀 북스[Bantam Books], 뉴욕, 1989년)를 읽어 보라.

 

그들이 살해한 자들 가운데 한 명은 프랭크 올슨[Frank Olson](탄저균을 전문으로 하는 CIA 세균전 박사--저자)으로, MK-울트라[MK-ULTRA]라고도 불리던 ‘하부계획-68[Subproject-68]’을 수행하던 도중 발생한 일이었다. MK-울트라는 1950년 4월 20일, 당시 CIA 국장이던 로스코 힐렌쾨터 장군[Admiral Roscoe Hillenkoetter]에 의해 ‘블루버드 프로젝트[Project Bluebird]’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것으로, 1950년 7월 20일, 그들은 수감자들의 “세뇌[brainwash]”를 위해 아미탈 나트륨[sodium amytal], 벤제드린[Benzedrine], 기타의 약물들을 사용했다. 1950년 9월 마이애미 뉴스[Miami News]지는 ‘세뇌 전술[BRAIN WASHING TACTICS]’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이는 ‘세뇌’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고트리브와 협업했던 자들 가운데 한 명은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페이퍼클립 이전에 오버캐스트 작전으로도 불렸던 것으로, 독일 과학자 및 기술자들의 미국 이송 작전--역주)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 온 헤롤드 볼프 박사[Dr. Harold Wolff]였다. 그는 파크-데이비스[Parke-Davis] 제약회사와도 함께 일했으며, “... MK-울트라 세뇌 프로젝트에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다”(p.191).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히피들에게 아파트를 제공하고 그와 동시에 LSD도 공급했으며,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와 함께 마인드밴더 프로젝트[Project Mindbender](만주에서 시행된 생체실험 방식의 프로젝트--저자)를 이끌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비밀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비밀에 참여했던 많은 자들이 케네디 암살이나 여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슈들에 여전히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많은 저작들과 기사들은 CIA가 JFK 암살에 관여되었다고 써 왔으며(‘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들’ 참조--역주), 이제 당신도 CIA 주도 암살 사건들을 책임지는 인물이, 과거 맨하탄 프로젝트의 안보 책임자였던 보리스 패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비행 접시”를 포함한 히틀러의 진보된 기술들과 여타의 비밀들을 입수하는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클라우디아 퓨리아티[Claudia Furiati]가 쓴 책, ‘JR 라이플[JR Rifle]--케네디와 카스트로 암살 계획’ p.36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는 1960년까지 CIA 서베를린 지부장을 담당했으며, 1961년부터는 리처드 비셀[Richard Bissell]에 의해 CIA 주도 암살 작전의 책임자로 지명되었다. 하비가 주도했던 정치적 지도자 암살 계획들에 대해서는 ‘JR-라이플’이라는 코드명이 부여되었다. 보 그리츠[Bo Gritz](‘피닉스 저널 독자의 편지’ 참조--역주)는 자신의 책, p.525에서 “케네디 암살의 코드명은 ‘ZR-라이플’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하비와 패쉬는 명백히 한 배를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제임스 본드[James Bond]” 시리즈를 쓰게 되었던 이언 플래밍[Ian Fleming]은 1941년 영국 정보기관의 고위직에 있을 당시, 윌리엄 도노반[William Donovan]에게 특별히 훈련되고 선별된 암살단을 조직해 볼 것을 권했다. PB/7(보리스 패쉬 7[Pash Boris Seven])은 “스파이 007”의 오리지널 컨셉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닉슨이 윌리엄 하비가 진짜 007이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가정으로는, 패쉬가 001이었으며,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7명의 요원들을 거느렸던 게 아닐까 싶다(원래는 5명이다). 만약 당신이, 어떻게 CIA, KGB, 나치, 공산주의자들, FBI 등 여러 파벌들이 서로 싸우고, 또 어떤 경우에는 함께 일하고 할 수 있었던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당신은 누가 그들 위에 있고, 누가 그들을 실제로 통제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 정보기관을 보기 바란다! 당신은 영국 정보기관이 영국과 유럽의 왕가 그리고 “귀족들[Aristocracy]”에 의해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1949-70년간 CIA에서 근무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 당신 닉슨 정부를 위해 비밀 활동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2년 9개월의 징역형에 선고--역주)가 아직 감옥에 수감중이던 1975년 12월, 그는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으며, CIA 암살 조직의 수장은 보리스 패쉬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앵글톤[Angleton]은 CIA 이스라엘 지부장이었으며, 대단히 친-이스라엘 성향의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마이어 랜스키[Meyer Lansky]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톰 맨골드[Tom Mangold]가 쓴 제임스 지저스 앵글톤[James Jesus Angleton]의 전기, ‘콜드 워리어[Cold Warrior]’ p.362에서 맨골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그렇지만, 내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업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앵글톤의 가장 친한 해외 친구들은, 그 때도 그 때 이후로도, 모두 모사드[Mossad](이스라엘 정보기관--저자) 출신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스라엘 동료들에 대해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으며, 이는 사후에도 그에게 대단한 영예로 여겨졌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자리는 윌리엄 콜비[William Colby]에 의해 승계되었다. 키신저가 “라로쉬[laRoche]를 붙잡기”를 원했을 때, 그는 앵글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앵글톤의 묘비명은 헤브루어로 쓰여져 있다.

 

‘최후의 심판[Final Judgment]’ p.97에서 파이퍼[Piper]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ZR/라이플 팀’은 사실 CIA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앵글톤의 애완견이었다. 앵글톤은 자신의 CIA 동료인 윌리엄 하비와 함께 이 조직을 운영했다.” 클라우디아 퓨리아티에 따르면, 조셉 슈라이더[Joseph Schreider]는 CIA의 연구소를 이끌며 암살용 독약 개발을 책임졌으며, 하비는 ‘페이퍼클립 작전’의 쉑클리[Shackley]가 운영하던 마이애미 지부의 명령을 따르며, 카스트로[Castro] 독살을 위해 슈라이더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앞서 우리는 패쉬와 하비가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정원 초과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하비는 실제로는 마이애미의 쉑클리와는 떨어진 채, 랭글리[Langley] 본부(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CIA 본부--역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블로우백’ p.153에 따르자면, “패쉬는... 1948년 봄, 철의 장막 뒤에서 변절자들을 고용하고 망명자들을 밀입국시키기 위한 블러드스톤 작전이 수립되었을 때, 육군을 대표해서 일했다. 1949년 3월 패쉬는 미 육군에 의해 CIA 정책조정국[OPC division]으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하비는 딕 러셀[Dick Russell]에 따르자면 1976년 6월 6일 사망했고, 패쉬는 심슨[Simpson]에 따르자면, 1988년에 80대에 이르게 되었다.

 

[Part V No. 7 인용의 끝]

 

하톤 : 아, 오늘 글로서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내일 쓸 거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잠자는 미녀의 눈을 뜨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한 번의 키스로는 더 이상 “미녀”를 깨우지 못할 것이며, “두꺼비들”은 계속 이 나라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좋은 저녁입니다. Salu.

 

 

제 8장, 기록 #1 하톤

1995년 12월 9일 토요일, 7:32 A.M. 9년 115일

 

호피족의 희망[HOPI HOPE]

 

우리가 우리 앞에서 실제로 목격되는 변화의 징후들을 통해, ‘변화의 드라마’가 라이브로 펼쳐지는 것을 지켜볼 때, 우리로서는 단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정말로 그저 보기만 해도, 아주 아주 많은 장소에서 예언들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바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그 장소들을 가리킵니다. 각각의 장소에서는 각각 다른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이를 확인하려는 바람을 가진 자들은 모두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흰색 버팔로 송아지 여인의 귀환[the return of White Buffalo Calf Woman]’이라는 라코타족[the Lakota]의 바람을 알고 있는 자들이 눈처럼 흰 버팔로 송아지의 기적적인 탄생이라는 우연의 일치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아,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흰색 버팔로 송아지는 네 번 색깔을 바꾸고 난 다음, 누가 다른 형제를 배신하고 파괴하는지를 아무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들 형제들 사이로 위장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누가 이 송아지를 사기를 원하는지 당신들이 눈여겨 보기를 바랍니다.--그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부와 명예를 가진 테드 터너[Mr. Ted Turner]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더 다루지는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러한 징조의 중요성에 너무 초점을 맞추게 되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할 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고, 그들이 져야 할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1996년에 대한 호피족의 예언을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 “새로운 종족의 인류가 이 행성 위에서 새로운 삶의 현실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들이 다른 별들로부터 왔을 때, 이미 의도했던 대로 전개될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한 가지 더 상기시켜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대변화의 시기에 인류에게는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아주 놀라운 일들도 함께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대의 예언들은 1995년을 과 맞서 싸우는 대공포의 시대가 시작되는 해로 보고 있습니다. “빅 보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게 되는데, 학생들이여, 이러한 일은 지금 펼쳐지고 있습니다.--우리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선택의 시기입니다. 당신은 살해될 도 있고, 보호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1996년에 대해서는 다음 설명도 있습니다. : “신 세계로 향하는 두 번째 대 이주는 이 행성 위에서 계속해서 권력을 잡기를 바라는 자들을 ‘할머니 지구’의 신성한 열 두 군데의 공간 안에 남겨 두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대 이주 이후에도 남기를 바라는 모든 자들은 열 두 개의 거대한 원과 조화를 이루고, 다른 행성들과도 조화를 이루는 공간 안에서 권력을 쥐기 위해 행성을 재건설하기 시작할 것이며, 집단 무의식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들 전체의 운명은 예언가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예언가들이 말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어떤 것이냐구요? 만약 당신이 진실의 길을 따라 가기만 한다면, 거짓은 완전히 파괴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대표해서 보내진 자들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해 본다면, 아마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일들’은 하나의 표시가 되며, 이러한 “표시들” 안에서 결국 알아 보게 될 것입니다. 흰색 독수리가 당신들의 위원회 테이블의 의장석에 내려 앉을 때, 진실 전달자들이 그들의 진실을 공유하게 될 때, 마치 그들 모두가 조용히 쉴 자리를 찾듯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 때, 그 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기록될 것이며, 그들의 ‘정신’은 새로운 체제를 설립하게 될 것입니다. 장부[accounting]는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구전되어 온 전통이 영예를 되찾게 될 것이며, 미래 세대들은 지금 이 시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들이 어디서 온 자들인 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기의 변화를 다루는 글들 역시 쓰여지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나중에 오는 자들은 이것이 보다 높은 앎[KNOWING]을 향하는 ‘대변화[GREAT change]’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자들이, 특별한 군주이자 마약왕에 대한 지난 11월의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캐치해 낼 수 있었던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1995년 11월 24일, AP통신 : 호몽, 버마(미얀마)[HOMONG, Burma]--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약왕 중의 한 명인 쿤사[Khun Sa]는 이제 은퇴해서 닭을 키우고 채소를 기르며 살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샨[SHAN]족 반군 그룹의 수장인 61세의 이 군사 지도자는 타이 북쪽의 매홍손[Mae Hong Son]으로부터 서쪽으로 50마일 떨어진 호몽[Homong] 본부에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쿤사는 미얀마군의 공격이 있은 지 1년 후, 라이벌 종족 그룹과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분열되고, 자신의 최고위급 부하들 가운데 일부가 미국 주도의 작전에 의해 태국에서 체포되자 은퇴를 선언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 것 같습니까? 자,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 의미는 미 정부의 범죄자들이 골든 트라이앵글 아편 무역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면, 오래된 영국-이스라엘의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가 미국과 마약 거래, 양쪽 모두를 장악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시온 의정서에서--하톤) 이런 방식이 될 것이라고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 다르마는 자신도 닭을 키우고 채소를 기르며 살아 가도 되는 지를 내게 물어 왔습니다! 오 이런, 내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은 끝이 없군요!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진실을 건네고 싶습니다. :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죽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울지만, 당신은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이 될 수 있도록 살아 가십시오!”

 

당신이 인생의 굴곡을 겪어 나가면서,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될 때, 당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 혹은 “그 또는 그녀가 어떻게 이러한 행동 또는 저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라며 과거를 되돌아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아주 주의깊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해 보곤 합니다. : “끔찍한 적이 될 수 있는 자는 결코 진정한 친구가 될 만한 미덕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는 이를 마음에 되새기면서,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회한에 사무치곤 하는 것입니다.--기억하십시오. 적이 되어 당신에게 타격을 가한 자가 여전히 친구로서 당신에게 건넨 약속들을 지키겠노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자는 당신의 관용과 용서가 아직도 더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 뿐입니다. 용서는 항상 ‘용서 그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만약 당신이 진실 속에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려 한다면, ‘기억’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입니다. 휴가나 여행과 같은 쉼과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될 때, 당신은 스스로가 “삶을 즐길 여유” 조차 가질 수 없는, 항상 “바쁘기만 한 사람”이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스스로 너무나 “바쁜 사람”이 되어, 정작 “필요한 것들”을 잊거나 의도적으로 간과하지는 않을 수 있도록, 항상 ‘당신 본연의 임무’가 당신 행동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럼, 계속 이야기해 온 주제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 [인용]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 Part V No. 8[Fire From the Sky, PART V #8]

by “아는 자[One Who Knows]”

 

독일의 비행 접시

 

히틀러의 진보된 기술에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수직 이착륙 비행체, 제트 엔진, 크루즈 미사일, 사운드 캐넌,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나치의 남극 기지’ 참조--역주) 연합군은 나치로부터 보잉 747 점보 제트기 제작의 청사진을 손에 넣기도 했다. 그들이 손에 넣은 최고의 비밀 기술 가운데는, 처음에는 “크라우트메테오르[Krautmeteors]”라고 불렸던 비행 접시도 있었다. 입수된 증거에 따르자면, 나치가 최초로 비행 접시를 만들기 시작한 건 1933년 경이었고, 대량 생산에 착수한 건 1940년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로는 벨론조[Bellonzo], 슈리버[Schriever], 미테[Miethe] 그리고 빅터 샤우버거[Voctor Schauberger]가 있었다. 샤우버거가 개발해 낸 “나는 모자[flying hat]” 형태의 비행 접시는 나중에 미국 상공에서도 발견되었다. 최종 모델은 벨론조-슈리버-미테 디스쿠스[Bellonzo-Schriever-Miethe Diskus]로, 직경 135 피트 정도의 크기였으며, 어떤 것은 225 피트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이 비행 접시들은 시간당 2,000km 속도로 날았으며, 원래 계획은 시간당 4,000km를 돌파하는 것이었다. 1945년, 이 비행 접시들은 채 3분이 지나기 전에 4만 피트 고도에 다다르고, 1,300마일(2,092km--역주)의 속도로 날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델타 윙 비행체[Delta wing craft]도 개발해 냈는데, 스텔스 기술 등이 적용된 것이었다.

 

[하톤: 당신들은 독일인들이 이러한 무기를 가지고도 정말로 전쟁에서 단순히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여, 전쟁은 계획되어 있었으며, 전쟁의 종결 역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계획대로 펼쳐졌을 뿐입니다.--정치적 의도를 가진 계획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많은 파일럿들이 독일 상공에서 이 이상한 비행체들을 목격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비행체가 만들어지자마자 다시 해체시켜 어디론가 보내도록 명령했다.--아마도 남극이었을 것이다. 비록 연합군은 어떠한 비행체도 손에 넣을 수 없었지만, 몇몇 과학자들은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내 사라졌으며, 벨 텍스트론[Bell Textron](1935년 설립된 텍사스 소재 미 헬기 제작사--역주)이나 51구역[Area 51]과 같은 장소, 놀랍게도 UFO 목격 장소로도 유명한 이 곳으로 이송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UFO들에 관한 몇 가지 뉴스들이 있었으며,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지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

 

뉴욕 타임즈, 1944년 12월 14일자 :

 

“떠다니는 미스터리한 공이 독일의 신무기이다. 연합군 원정대, 최고 사령부, 12월 13일--독일의 신 무기는 접경 지역 서방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오늘 사라졌다.”

 

“미 공군 조종사들은 독일 영토 상공에서 은빛 색상의 구체들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이 구체들은 단독으로 혹은 군집을 이룬 채로 나타났다. 때때로 반투명의 구체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사도 있었다.

 

최고 사령부, 12월 13일 (로이터 통신)--독일인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비밀” 무기를 만들어 냈다.”

 

“새로운 장비는 명백히 상공 방어용 무기처럼 보이며,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거대한 유리 공들처럼 보인다. 무엇이 이 물체들을 마치 하늘의 별들처럼 떠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인지,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또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해 추정해 볼만한 정보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포클랜드 전쟁[Falkland Islands War]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보다는 나치와 더 많은 관련성을 가졌던 사건으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사항을 알고 싶다면, 부디 피닉스 저널들을 참고하기 바란다.(‘포클랜드 전쟁의 내막’ 참조--역주)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남극 기지로부터 나와 아르헨티나, 칠레 등지로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엄청난 규모의 토지와 기업체들을 사들였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귀환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독일은 물론 여러 나라에 걸친 다수의 기업들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들은 독일의 국고를 사용했고, 여타 다른 나라들의 재정도 손에 넣었으며, 원래 러시아인들이 입수한 것이지만, 중간에 가로챘던 진짜 미 달러 인쇄판을 사용하여 위조 달러를 찍어 내기도 했다. 몇몇 인쇄판들은 미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 재무장관 휘하에 있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진짜 이름은 바이스[Weiss]이다.--저자)(바이스는 화이트의 독일식 이름--역주) 재무 차관보에 의해 빼돌려졌던 것으로 점령지 독일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소비에트인들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화이트는 또한 수 톤에 달하는 지폐를 대량으로 탈취하는 일을 총 지휘하기도 했다. FBI 국장이었던 J.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는 재무 차관보가 공산주의 스파이이자 절도범임을 입증하는 모든 증거를 준비하여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트루먼은 물론 화이트를 직위에서 해제했다.--하지만, 그는 이내 화이트를 국제통화기금(IMF) 수장으로 승진시켰다. 나는 당신들에게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이 이야기는 아주 흔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언론을 통해 이 일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화이트는 “자살”했다.

 

독일의 경제 “기적”

 

[하톤: 이는 일본의 “기적”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당신들도 알게 되겠지만, 일본 기업들의 이상한 행동에 더해, 일본인들은 을 필리핀으로 옮겨 갔으며, 그들 역시 미 달러 인쇄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이 인쇄판들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당신들은 어쩌면 그들이 “연방준비위원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면, 폴 매닝[Paul Manning]이 쓴 ‘망명 중인 나치 간부, 마틴 보어만[Martin Bormann, Nazi in Exile]’을 참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 표지 다음의 책 소개 란에 보면, “...독일은 정치, 군사적인 패배를 경험한 이후 35년간에 걸쳐 산업과 재정에 있어서 사실상 재탄생한 나라로 거듭났는데, 이러한 경제 기적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보어만은 안내자 역할을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몇 달 동안, 제 3제국은 휘청거리고 있었으며, 결국은 패배로 무너져 내렸지만, 보어만은 각국에 흩어져 있던 750개 기업들이 정권과는 거리를 두고 중립을 지키도록 했다. 이후 이 기업들은 탈출 러시를 이뤘던 독일의 부를 건네 받았으며, 강력한 전초 기지들이 되어 다시금 독일이 정치, 경제적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나와 있다.--저자) 마이클 바-조하르[Michael Bar-Zohar]의 책 ‘복수자들[The Avengers]’에 따르자면, 이 책은 1944년 8월 10일,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있었던 미팅 행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1986년,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우리는 ‘정보 공개법’에 따라 2차 세계 대전 말기 독일 국고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에 관해 참고할 수 있는 161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물들을 입수하게 되었다. 이 기록물 대부분은 우리의 요청에 따라 비밀 해제되기 전까지 비밀로 분류되어 있던 것들이었다. 문서 하나는 1944년 11월 27일자, 19,489호로 제목은 ‘EW-Pa 198 첩보 보고서 전송’(?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저자)이었다. 국무장관실, 경제 전쟁국, G-2 경제과, 존. W. 이스튼 중령[Lt. Col. John W. Easton]이 작성한 것이었다. 문서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 “나는 1944년 11월 7일, SHAEF(연합군 원정대 최고 사령부)[Supreme Headquarters Allied Expeditionary Forces] G-2 경제과에 의해 작성된 EW-Pa 198 첩보 보고서를 동봉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 보고서는 전후 독일의 부활을 위한 독일 산업가들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특허, 재정 보유고, 자산의 국외 유출, 기술자들의 전략적 배치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매닝은 보어만에 관한 자신의 책을 집필함에 있어서 이러한 문서들을 분명히 참조했던 것이다.

 

1944년 8월 10일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있었던 미팅 행사의 성격은 이 문서들에 나와 있는 몇몇 문장들을 통해 보다 잘 가늠해 볼 수 있다. :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 산업가들은 수출을 통해 독일의 힘을 증강시켜 나가야만 한다. 그들은 또한 향후 마키[Maquis](2차 대전중 프랑스의 반독 유격대--역주)처럼 (게비르크페어타이디궁슈텔렌게엔[Gevirgverteidigungsstellengehen] 안의) 지하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강요될 나치당의 재정 지원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지금부터 정부는 산업가들에게 거액을 할당하여, 그들 각자 각자가 해외 각국에서 안정적인 전후 기반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외 각국에 소재한 현존하는 재정 보유액은 나치당이 처분할 수 있어야 하며, 패전 이후에도 강력한 독일 제국이 건설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독일의 거대 기업들은 즉각적으로 소규모 기술 사무소나 연구소들을 만들 필요가 있고, 이 기관들은 절대적인 독립성을 유지한 채, 기업과의 커넥션이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기관들은 향후 자신들의 연구를 계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문서들을 전달받게 될 뿐만 아니라, 신무기 제작 계획과 청사진들을 하달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그 결과물들은 결코 적들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강조는 원 저자가 직접 한 것이다.--저자)

 

이 문서의 마지막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 “독일의 패전 이후, 나치당은 자신들의 가장 잘 알려진 지도자들 가운데 몇몇이 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나치당은 산업가들과 협력함에 있어서, 덜 눈에 띄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독일의 여러 기업들에 걸쳐, 기술 전문가들이나 연구소 연구원들로 배치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어떤 문서들은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 “약탈된 금괴(1945-1948), 접근 번호 56-75-101. 관리함 번호 169, 파일 번호 BIS/2/00.” 이 문서들은 독일이 “약탈한” 금괴들이 스위스 국제결제은행(BIS)[the 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s]에 예치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중요한 문단(9번째) 하나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서신과 증언에 따르자면 전쟁 기간 B.I.S.의 관리는 ‘추축[Axis] 동맹의 대표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행정 위원회의 손’에 달려 있었다. 또한 1942년 독일이 맥킷트릭 은행장[President McKittrick]의 재선에 동의를 표했을 때, 그의 ‘개인적인 견해들’은 독일에게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파일 안에는 뉴욕 타임즈지 기사 하나가 동봉되어 있는데, 날짜는 나와 있지 않지만 1945년으로 추정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맥킷트릭이 체이스 은행 고위직 후보로 올랐다. 그는 이번 가을 이 은행의 부행장 직위를 이어 받게 될 것이다. 체이스 은행 이사회 의장인 윈트롭 W. 앨드리치[Winthrop W. Aldrich]는 1940년초 이래 국제결제은행[B.I.S.] 은행장으로 근무해 온 미국 은행가 토마스 H. 맥킷트릭[Thomas H. McKittrick]이 오는 가을 뉴욕 체이스 내셔널 뱅크[the Chase National Bank of New York] 부행장이 될 것이라고 어제 발표했다.” 기사는 맥킷트릭의 다음 언급을 인용하며 끝맺는다. : “나는 전쟁 기간 중립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는 극도로 힘들고 많은 노력이 수반되는 일이 되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과거 일급 비밀이었으나 비밀 해제된 또 다른 문서의 제목은 “국제결제은행장, 맥킷트릭과 스위스에서 가진 대화”로 1945년 3월 23일 오르비스 A. 슈미트[Orvis A. Schmidt]가 모겐소 재무장관에게 전한 것이었다. 이 문서는 나치 은행 시스템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던 풀[Puhl] 부행장에 대한 맥킷트릭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맥킷트릭은 풀이 은행가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 지난 약 20년간 제국은행[the Reichsbank]을 위해 일해 왔지만, 나치와 관점을 공유하지는 않았던 인물로 묘사했다... 스위스 국립은행은 자신들이 약탈된 금을 입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제국은행의 임원 중 신뢰할만한 인물로 간주되던 자에게, 자신들이 구매한 각각의 금괴가 약탈품이 아님을 증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입증했던 인물이 바로 풀이었다.”

 

여기서 풀은 제국은행의 원로 부행장이었던 에밀 요한 루돌프 풀[Emil Johann Rudolf Puhl]이었다. 그는 나치를 대신해 전리품들을 은행에 입고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배송 업무를 전담했던 그의 수석 사무관, 알버트 톰스[Albert Thoms]는 귀중품들을 선별하고 재포장하는 일에 약 30명에 달하는 인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귀중품들은 “수 백만이 넘는 금 본위 마르크, 파운드, 달러, 스위스 프랑, 3,500 온스의 백금, 550,000 온스가 넘는 금, 4,638 캐럿의 다이아몬드, 여타 보석들, 그리고 수 백 점이 넘는 예술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전쟁의 여파[Aftermath]’, p. 226, 라디슬라스 파라고[Ladislas Farago], 아본[Avon]사, 1974년). 이러한 물품들은 ‘파이어랜드 작전[Operation Fireland]’ 또는 ‘악치온 포이어란트[Aktion Feuerland]’에 따라 독일 국외로 운송되었으며, 파라고는 이와 관련하여 보어만에 관한 자신의 책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이 작업의 명칭은 몇몇 선적물들의 최초 인도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최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열도에서 착안하여 ‘랜드 오브 파이어’라 명명되었다”(p. 228). 하지만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파라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보어만은 나치 친위대[SS]가 보유했던 보물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분량만을 입수하여 ‘악치온 포이어란트’에 따라 해외로 보냈다. 사실상, 대부분의 보물들은 여전히 종적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식들을 개발해냈다. 직접 석유를 제작했고, 석탄으로부터 “버터”를 생산했으며, 분말 우유를 발명하고, 동결 건조법을 개발하여, 이러한 분말 우유를 영구적으로 보관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 밖에도 온실 속의 화학적 “토양” 위에서 여러 작물들을 길러내는 등 다양한 자급자족 방식들을 터득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히틀러가 ‘마지막 대대(라스트 바탈리언)[Last Battalion]’라고 불렀던, 남극에 주둔한 비밀 UFO 부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들이었다.

 

영국과 미국 화폐의 위조는 ‘베른하르트 작전[Operation Bernhard]’ 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가짜 영국 지폐의 제작에 관해서는 베른하르트 작전을 다룬 책과 기사를 통해 종종 논의되어 왔지만, 위조 달러의 제작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미국은 사담 후세인과 레바논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위조 달러에 대한 대응책으로 새로운 지폐를 발행하고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위조 달러들은 남미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사실상 모두 마약 거래로부터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지는 것이다.

 

컨텍트[CONTACT](1993-1999년간 간행된 피닉스 저널 자매지--역주) 뉴스페이퍼가 처음으로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 시리즈를 실었을 때, 컨텍트는 이어서 포클랜드 전쟁의 진실에 관한 정보도 재간행했다. 그 시리즈는 러시아인들이 록펠러 카르텔 세력과 함께 남 조지아 섬에서 영국 볼셰비키 부대를 격파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포클랜드 전쟁의 내막’ 참조--역주) 만약 당신이 그 글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이야기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 정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나치의 부대도 개입되었으며, 러시아인들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웠다. 만약 당신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 이러한 설명들을 믿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이 때의 러시아인들은 민족주의자들로 자신들의 나라를 빼앗아 갔던 시오니스트 볼셰비키 세력에 반대했던 세력이었다. 시오니스트 볼셰비키들은 뉴욕의 남동부[the lower East Side of New York City]에서 길러졌으며, 뉴욕과 런던의 은행가들에 의해 재정을 조달받아 왔다. 바로 이들이 러시아를 침략하여 차르[Tzar]와 많은 민족주의자들을 죽이고, 러시아 정부를 강탈했던 것이다.(‘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 ‘러시아 vs. 하자르’ 참조--역주)

 

러시아 민족주의자 가문 출신의 보리스 패쉬와 같은 인물이 어떻게 나치 게슈타포와 친위대 소속의 요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미국 장군인 조지 패튼[George Patton]도 우리는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나치와 함께 싸웠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패튼은 2차 세계 대전에는 이 세상의 골치 덩어리인 시오니스트 은행가들의 국제적인 음모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패튼의 문서들[Patton’s Papers]’ 제 2권, p. 735를 참고하기 바란다.--저자)

 

1982년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날, 러시아/록펠러/나치 기습부대는 남 조지아 섬 지하 해군 기지 안으로 중성자 폭탄을 투입하는 데 성공했다.

 

포클랜드 위기 때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를 원한다면, 1995년 1월 17일자, ‘컨텍트 : 피닉스 프로젝트 뉴스페이퍼’를 읽거나 혹은 피닉스 저널 제 13권 ‘벽장 속의 해골들[Skeletons In The Closet]’을 읽어보기 바란다. (컨텍트[Contact], Inc., 사서함 27800, 라스베가스, 네바다주[NV] 89126, 전화 1-800-800-5565. 피닉스 저널에 대해서는 피닉스 소스 디스트리뷰터사[Phoenix Source Distributors, Inc.] 사서함 27353, 라스베가스, 네바다주 89126로 편지를 보내보기 바란다. 전화 1-800-800-5565. 전화번호는 동일하지만, 주소는 각각 다르다.--저자)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는 록펠러 카르텔을 대표하는 장군이었다. 자신의 책 ‘경고[Caveat]’에서 포클랜드 전쟁에 관한 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 “1982년 3월 28일 일요일, 영국 대사 니콜라스(“니코”) 핸더슨[Nicholas (“Niko”) Henderson]은 내게 캐링턴 경[Lord Carrington](1979-82 영국 외교장관--역주)의 편지를 전달했다. 캐링턴 장관은, 남극권에서 몇 도 위 남대서양에 위치해 있으며, 영국령 포클랜드 섬에서 동쪽으로 60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영국령 남 조지아 섬에 일군의 아르헨티나인들이 9일 앞서 도착했다고 전했다.” 나는 당신들이 여지껏 포클랜드 전쟁은 포클랜드 섬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내기를 걸겠다!

 

[하톤: 부디 주목해 주십시오. ‘벽장 속의 해골들[SKELETONS IN THE CLOSET]’(피닉스 저널 13권)은 초기에 간행된 피닉스 저널들(지금은 약 160권에 달합니다.) 가운데 한 권으로 아메리카 웨스트 출판사[AMERICA WEST PUBLISHERS](조지 그린[GEORGE GREEN])와 아메리카 웨스트 배급사[AMERICA WEST DISTRIBUTORS](데지레 그린[DESIREE GREEN])에 의해 아직도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피닉스 소스[PHOENIX SOURCE]사는 그간 명백한 이유 때문에 이 책자를 의도적으로 재출간하지 않아 왔습니다.--법원의 명령에 따라 간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이 책들의 출판권은 피닉스 연구소[THE PHOENIX INSTITUTE]로 되돌려졌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Green]은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 책의 표지 바로 다음 장에 저작권도 표시해 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좋습니다.--만약 당신이 이 책을 주문한다면, 그는 배송해야만 합니다. : 부디 컨텍트[CONTACT]지와 피닉스 소스사가 이 저널들을 간행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법원의 명령에 따르자면, 그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도, 어떠한 법인도 이 저널들을 판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과 이 단체들은 “금서로 지정된” 피닉스 저널들을 계속 판매하여, 다르마가 법원 모욕죄에 따른 구금의 위기에 처하도록 협잡을 펼쳐 왔습니다. 이 책들은 바로 논란이 되었던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피닉스 저널 30-37권--역주)인 것입니다. 만약 이 책들이 재간행되어야 할 기간 안에 다시 간행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간행할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나는 ‘하늘에서 추락하는 화염[FIRE FROM THE SKY]’은 오디오 테잎으로도 제작하도록 요구할 생각이며, 우리는 이것을 책의 참조용 부록으로 넣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제프[JEFF]가 있는데, 그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자입니다! (그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자들은 얼마간 혼란을 겪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프는 이 일을 분명코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의도와 관련하여 꽤나 혹독한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테스트를 통과했고, 우리로서는 이 귀한 자원 덕택에 당신들 가운데 어떠한 이유에서든 읽을 수 없는 사람들과 또 독서보다는 청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중요한 정보들에 이내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기쁜 마음입니다. 나는 참을성이 부족한 우리 팀원들에게 인내라는 미덕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디오 테잎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몇몇도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또 다른 긴급한 일들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돈은 우리의 “목적도 아니고 관심사도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나갈 것입니다. 리틀 크로우[LITTLE CROW]의 금언과도 같이, “그리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정확히 그리 될 것입니다.”

 

내가 기록으로 남겨 알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아는 자[ONE WHO KNOWS]”라는 저자는 데이브 오버톤[DAVE OVERTON]과 아주 아주 가까운 친구로, 피닉스 연구소에 있어 금전적 문제와 관련한 데이브의 의도에 대해 증언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조지 그린과 데지레 그린 부부가 언급했던 바와는 달리 개인적인 용도로 쓰라고 선물로 건넸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 최근 변호사와 딕슨씨[MR. DIXON]가 데이브 오버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방문했을 때, 이러한 사실들이 잘 설명되었습니다. 당신들, 일반인들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유일한 이유는 데이브가 어떤 식으로든 도와 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생각보다 참 작지 않습니까? 실로 그러합니다!]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과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간의 갈등에 관해서는 언론 상의 많은 논란이 있었다. 커크패트릭은 시오니스트로 UN 주재 미 대사였다. 그녀는 “최대 규모의 앵글로-유태 독립 주간지”인 ‘쥬이시 프레스[the Jewish Press]’지에 정규 칼럼란을 보유하고 있었다. 헤이그는 헨리 키신저와 오랜 친분 관계를 맺어 왔으며, 1969년 헤이그는 키신저의 군사 참모 고문이 되기도 했다. 키신저는 ‘페이퍼클립 작전[Paperclip Operation]’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온 인물들 가운데 한 명임을 기억하라. 1982년 1월 레이건은 자신의 국가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er]을 리처드 알렌[Richard Allen]에서 윌리엄 P. 클라크[William P. Clark]로 교체했다. 클라크는 또 다른 페이퍼클립 출신의 인물이었으며, 당시 헤이그 휘하의 국무 부장관직을 맡고 있었다. 닉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 “만약 당신이 헨리(키신저)의 사무실에 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는 것을 본다면, 대개 알렉산더 헤이그[Al Haig]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포클랜드 전쟁의 풀 스토리[War In The Falklands, the Full Story]’, 선데이 타임즈[the Sunday Times]지 런던 인사이트 팀[London Insight Team], 하퍼 & 로[Harper & Row] 출판사, 뉴욕, 1982년. P. 123.)

 

[Part V No. 8 인용의 끝]

 

하톤 : 그럼, 잠시 쉬도록 합시다.

 

......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59권 (미간행 저널), 제 7, 8장, pp. 51-64.

 

 

http://fourwinds10.com/unpublished_phoenix_journals/

 

https://truthinligh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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