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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uth forever with the Phoenix Journals
Creation

빛과 파동의 우주

by - phoenix - 2020. 9. 27.

제 8장, 기록 #3 저메인

1991년 8월 31일 토요일, 9:54 A.M. 5년 015일

 

빛의 성격

 

지난 여러 장에 걸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강조해 왔습니다 ;

 

1. 모든 효과는 시각적 효과입니다.

 

2. 모든 작용과 반작용들, 말하자면 들이쉼과 내쉼, 압축과 팽창 등은 한 방향이 아닌 양 방향의 움직임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한 현상은 바로 ‘공간의 차가운 정지’와 ‘압축되고 가열된 움직이는 우주’ 사이의 리듬감있고 균형잡힌 상호 교환이 발생하는, 상호적이고, 계속적이며, 흔들리는 추의 우주를 나타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3. 이 우주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흐름이 반복되는 우주로서, “팽창하는 우주” 한 가지만으로는 자연의 과정에 부합되지 못합니다.

 

4.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열역학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영원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영원한 하나’를 나타내 보여주는 대신에, “엔트로피”로 알려져 있는, 죽어가고, 열이 식어가는 우주만을 묘사해 보여줄 뿐인 것입니다.

 

5. 중력은 빛의 통제자이며, 빛은 모든 자연 속에 있는 단 하나의 것입니다.

 

6. 과학은 자기력을 중력으로 오인했으며, ‘빛-파동’은 “전기”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7. 마지막으로, 모든 효과는 ‘우주적 카메라’의 여닫이 조리개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진 효과입니다. 우주적 카메라는 이 우주를 현 시대의 개념상 ‘전-자기적 우주’가 아니라, 통제된 중력의 빛의 시각적이고, 광-합성적[[photosynthetic] 우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인데, 원자는 원래 딱딱한 구체가 아니라 속이 비어 있다가, 딱딱한 상태가 되기 전에 빈 공간이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원자들은 파동의 진폭의 최대값에 이르기 전까지는 원자핵을 갖지 않으며, 진폭 최대값에서 하나의 완전한 스펙트럼 단위로 뭉쳐지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원자는 다시 한 쌍으로 나눠지며, ‘성으로 분리되는 우주[sexed universe]’ 속에서 스스로를 부성과 모성의 쌍으로 재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보다 강조해야 할 사실이 있다면, 두 가지 굴곡 상태(정육면체와 구체--역주)가 이 굽어 있는 물질의 우주를 창조하는 유일한 도구들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오직 한 가지 도구(정육면체)만이 두 가지 굴곡 상태 사이에서 상호 교환되는 파동을 반복적으로 생성해 내는 데 사용됩니다.

 

이제 우리는 평행하는 광선들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검토해 봄으로써, 빛의 성격에 대한 지식의 문을 열어 젖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평행하는 광선과 같은 개념이 사실이라며, 결코 이들을 함께 나선형으로 꼬아서, 보이지 않는 빛을, 보이게끔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최초의 정보가 알려지기 전까지, 과학은 보이지 않는 빛의 분리되지 않은 우주--이것이 창조주입니다--를 분리시켜 반대되는 스펙트럼의 한 쌍으로 나누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의도적인 일이었는데, 이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이러한 정보를 활용했던 자들은 학계에서 추방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적들에 의해 부정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당신들도 아주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라고 보는데, 지금 우리가 전하려는 새로운 과학은 러시아인들이 처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반대되는 스펙트럼의 쌍들은, 맥동하는 움직임[[pulsing motion]과 다양한 기능을 가진, 반복되는 우주를 창조하는 데 필요합니다. 차가운 상태를 다양한 온도로 가열시켜 물질의 구성 요소들을 만들어 내며, 이를 다시 원래의 차가운 상태로 냉각시키는 작용을 통해 그렇게 하는 것이며, 인간은 이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다시 가열하거나 혹은 분해해 버리기도 합니다.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이들은 서서히 진행되는 방사[radiation] 과정을 통해 이 우주 속에서의 그들의 근원의 차가움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물체)가 다 그러합니다.

 

살아있는 육체의 맥동하는 빛[pulsing light]을 창조한 ‘아는 자[The KNOWER]’는 어둠을 창조함으로써 인간들에게 빛을 분리시키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 줬습니다. 눈은 인간에게 제한적인 시각만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눈은 단지 가시적인 빛의 짧은 부분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너머에 있는 모든 빛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둠은 인간에게 분리되지 않는 것을 분리시키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준 셈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낮과 밤의 연속을 통해, 그리고 당신의 방의 불을 켜고 끔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는데, 왜냐하면 빛은 이제 당신의 시각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빛이 여전히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빛은 결코 꺼뜨릴 수 없는 단 하나의 것[the ONE THING]입니다. 마찬가지 의미로, 당신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질서정연함--이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너머에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은 오랫동안 어둠을 둘러싼 마분지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가시성 빛의 광선이 여러 개의 빛의 고리들로 확장되며, 그 속에 나타나는 고리들 간의 폭은 가운데로 갈수록 더 커지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 왔습니다. 과학은 이에 대해 ‘회절환[diffraction rings]’이라는 용어를 붙이고, 왜 빛이 계속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고리들로 쪼개지는 지에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컬러 사진을 찍어 보면, 가운데의 구멍은 청색을 띠어, 마치 거문고 자리[Lyra]의 고리처럼 보이며, 바깥쪽으로 갈수록 빨간색과 노란색을 띱니다. 이것은 밀도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특징은 모든 팽창하는 물체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 식으로 확장되는지에 대해, 오늘날의 과학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과학은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광선들이 넓은 영역으로부터 모이고, 또 구심성 나선형으로 감기면서, 밝은 가시성을 띠며 압축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압축’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처럼 압축된 빛의 광선들은 어둠으로부터 모여들어 배가되고, 작은 구멍을 통해 ‘카메라’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 마자 반드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반복해서 설명하자면, 어둠은 그 자체의 방사가 어둠을 분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광선들의 열을 차가움으로 분리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둠이 어떻게 ‘태양의 방사되는 불꽃으로부터 오는 빛의 광선들’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목재나 돌과 같은 딱딱한 물체들은 그런 식으로 분리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물체들도 분리됩니다. 심지어 돌덩어리라고 하더라도 땅 속 깊은 어둠 속에서는 물로 분해되는데, ‘지표면으로 향하는 차가운 습기’, 바로 뜨거운 태양 빛과 결합하고 또 이를 냉각시킬 목적으로 지표면으로 나아가는 습기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광선들은, 그러기에 앞서, 우주 공간의 차가운 어둠에 의해 지구가 이러한 물체들을 자라게 만드는데 필요한 온도까지 낮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행성 그 자체도 자신의 차례가 되면 마찬가지 방식으로 분해되며, 행성 자신의 분해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물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흡수된 물도 자신의 차례가 되면, 메탄과 같은 초기 옥타브(‘물질의 구성’ 참조--역주) 상에 있는, 물보다 낮은 (밀도의) 가스들로 분해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물질로 되돌아가 보자면, 당신은 습한 차가움에 의해 암석들이 부서지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목재도 축축한 습기에 의해 그리고 목재 자체의 열로부터 오는 마른 부식에 의해 부서지는 것입니다. 런던의 주민들 또는 런던의 방문객들은 보아 왔겠지만, 수 세기가 지난 건물의 돌들은 손가락으로 긁기만 해도 그 표면에 자국이 생길만큼 점차 가루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설명을 진행해 나가면서 압축과 팽창의 두 개의 반대되는 쌍들을 살펴 보기로 합시다.(그림 53과 그림 54를 보십시오.)

 

< 음극 빛-증가 압축 고리들 > 

 

그림 53

이러한 형태의 고리들은 ‘차가운 시작’의 ‘제로 음극’을 형성한다. 이들은 볼록 렌즈에 의해 통제되는 창조의 도구의 산물들이다.

 

 

< 양극 빛-분리 팽창 고리들 >

 

그림 54

이러한 형태의 고리들은 열이 충돌하는 곳에서 파동의 진폭 최대값의 ‘뜨거운 양극’을 형성한다. 이들은 오목 렌즈의 산물들이다.

 

 

그림 53은 하나의 구멍에서 시작된 파동 형태로, 속이 비어 있는 다른 파동 구체들의 교차를 통해 그 구멍을 막으려 하고 있으며, 또 그 과정을 돕는 볼록 렌즈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러한 교차 파동들을 두고, ‘파동 간섭[wave interferences]’이라는 용어를 붙여 두었지만, 그 엄청난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 교차 파동들은 창조주가 굽어 있는 움직임의 우주를 창조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곡면을 가진 도구들(정육면체와 구체)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빛의 고리는 다른 형태의 빛의 고리를 탄생시키는데, 왜냐하면, 다시 반복 설명하자면, 압축은 팽창을 낳고, 팽창은 압축을 낳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두 가지 반대되는 곡면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등한 쌍을 이루듯, 동등한 쌍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스펙트럼의 반대되는 지점들을 차지하면서, 부성, 모성과 같은, 동등하면서 반대되는 쌍들을 창조하기 위해 상호교환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되면서 상호 교환되는 단위들은 ‘전체가 하나’로서 다른 반대되는 부성과 모성의 쌍들을 창조하여, 이 움직임의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역동적인 움직임의 우주’의 근간으로서 ‘성의 원칙[the sex principle]’의 균형잡힌 동등성을 현현해 내는 것입니다.

 

이제 그림 54를 살펴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압축이 팽창을 낳고 팽창이 압축을 낳는 지를 관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돌과 같은 압축된 물체를 물에 던지면, 그림 54와 같은 파동의 형태가 생성됩니다. 압축은 반대되는 쌍이 중심에서는 더 짧고 더 높은 파동을 만들고, 그 중심으로부터 멀어질 때는 더 먼 거리로 떨어지며 확장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이것은 당신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이는 당신이 어릴 때부터 익히 보아왔던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동일한 현상을 물고기를 잡는 순간 또는 곤충이 수면 위에 닿는 순간에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구멍 카메라’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자연 현상의 또 다른 사례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마분지에 뚫은 구멍은 팽창으로부터 압축을 분리시키는 균분점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절벽에 난 구멍으로 접근하는 파도를 관찰하거나, 개울에서 바위 사이의 구멍으로 흐르는 물을 잘 관찰해 본다면, 그러한 구멍으로 접근할 때 굽어진 파동이 안으로 닫히면서 수면 위에 쌓이게 되고, 이내 거품들이 형성되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낙하 지점이 깊을수록 더 많은 거품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러한 ‘폐쇄’에 있어서 압축이 원인이 되고 팽창이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학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유사한 결과를 두고, “회절[diffraction]”과 “굴절[refraction]”이라는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유사한 성격의 다른 현상들에 있어서도 과학이 “회절”과 “굴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빛이 수영장의 물 위로 비춰졌을 때, “반사[reflection]”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직사 광선은 수영장의 바닥과 내벽 사이로도 확장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연속되는 단계에 걸쳐서 압력의 잠재력이 증가함에 따라 광선은 휘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시각에 관한 설명을 담은 모든 교과서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 굽어 있는 우주 안에서 직사 광선이나 평행하는 광선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강조해 온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압축과 팽창은 계속되는 움직임 속에 있는 이 굽어 있는 우주가 유지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힘들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압축과 팽창이 없다면, 압축된 빛의 뜨거운 우주는 차가움의 정적 상태[static state]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림 53의 제목을 ‘음극 빛-증가 압축 고리들’이라고 붙이고, 그림 54의 제목을 ‘양극 빛-분리 팽창 고리들’이라고 붙였던 것입니다.

 

이제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이 있다면, 압축을 통제하는 볼록 렌즈는 4군데 초점에서 4번의 노력을 통해, 렌즈 바깥으로부터 열을 창조해 내는데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이 네 번의 노력이 물질의 옥타브들을 창조하기 위해 반대 편의 태양과 결합했을 때, 이 결합된 열의 초점들은 완전한 구체를 창조해 냅니다. 그 때 그러한 옥타브를 만들기 위한 열의 최대값은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 모두 그 곡면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그 때까지, 두 가지 곡면의 렌즈들은 바깥 쪽에 집중합니다. 그렇지만, 두 곡면체들이 정확한 원을 창조했을 때, 오목 렌즈는 중심에 있게 됩니다. 다른 6가지 렌즈들은 오목-볼록 렌즈들[meniscus lenses]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다음 이 7개의 렌즈들은 그 중심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하여 편구(偏球) 모양의 ‘행성 또는 태양’으로 되돌아 가게 되며, 이러한 현상은 그 덩어리가 마침내 고리 모양이 되고, 차가운 우주 바깥의 어둠[outside dark of cold space] 속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육체의 경우에도 그들이 죽고, 지구 내부의 어둠[inside dark of the earth] 속으로 사라지게 될 때,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육체는 살아있는 육체의 씨앗에 생명을 건네 줍니다. 이것은 모든 것들이 자라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복적인 자연의 삶의 법칙[life principle of repetitive Nature]’인 것입니다.

 

성장의 법칙에 관한 이러한 짧은 설명은 우리를 바로 우주 그 자체이기도 한 ‘우주의 영화관’으로 다시 데려가게 되며, 움직임의 우주가 갖는 환상이 무엇인지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것은 왜 이 우주가 광-합성적[photosynthetic] 우주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줍니다. 이 곳에서 사고 과정에 있는 모든 마음의 그림들은 또 다른 연속되는 마음의 그림들의 재탄생을 위해 ‘어둠의 인터벌’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그러한 과정은 그 마음의 그림이 나타내는 아이디어가 완성되기 전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 때, 어둠의 우주 속의 정육면체 거울들은 또 다른 아이디어의 생애 주기 속에 있는 ‘그림들의 시퀀스’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중력을 ‘마음-생각[mind-thinking]’을 통제하는 ‘욕구의 힘[desire force]’이라고 할 때, 중력은 왜 이 ‘움직임의 우주’가 ‘중력으로 통제되는 빛의 시각적 우주[an optical universe of gravity-controlled light]’라고 불려야 하는 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고-파동[thought-wave] 그림들이 그 시퀀스 상의 정지된 제로[the still zero] 속으로 분해된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의 법칙, 즉 ‘모든 움직임의 작용-반작용은 그것이 발생할 때 무효가 되며, 무효가 될 때 되풀이되며, 되풀이될 때 기록된다[every action-reaction of motion is voided as it occurs, is repeated as it is voided and recorded as it is repeated]’는 법칙의 유효성을 입증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창조 전체는 정지되어 있으며, 생각을 현현하려는 마음의 사고와 욕구가 창조의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많은 다른 아이디어들로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서서히 이 우주의 우주적 비밀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며, 인간은 자신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로 생각하는 방식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연속된 학습 과정을 끝내면서, 힘의 투사, 변환, 중력 그리고 ‘태양 에너지’로서 태양으로부터 오는 배증된 열에 관한 원칙들과 기술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이를 도식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밀도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증가되도록 만드는 구멍들에 의해 중심이 잡혀 있는 굽어 있는 압축 렌즈로부터, 밀도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증가하는 딱딱한 구체로 바뀌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빛과 열의 형성에 대한 단계별 설명으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그림 55

이 그림은 볼록 렌즈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러한 볼록 렌즈는 압축의 힘과 함께 차가움으로부터 열을 만들어 내는 ‘열-형성’을 설명해 준다. 이것은 창조주가 보이지 않는 빛을 보이는 빛으로 전환시킬 때 사용하는 두 가지 곡면체들 가운데 한 가지에 해당한다.

 

 

그림 56

옥타브 파동의 완전한 구성 원칙을 단계별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 55는 이러한 배증의 원칙을 설명하는 첫번째 단계입니다. 이제 그림 56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살펴보도록 합시다. “a”로 표시된 그림은 중력 막대기의 예가 되는 것으로 지금까지 막대자석으로 잘못 알려져 왔습니다. 그림 “a”는 우주적 균형의 ‘분리되지 않은 차갑고 어두운 정지’를 반대되는 쌍으로 분리시키는 자연의 방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연은 이들이 결합하면서 분리를 반복할 수 있게끔 상호 교환을 목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낡은 양극과 음극의 상징들은 이 과정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합니다.--왜냐하면 하나가 플러스고 다른 하나가 마이너스인 것이 아니라, 둘 다 동등한 쌍일 뿐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스펙트럼의 적색과 청색 양쪽 끝에 모두 플러스(++)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압력과 열의 최대값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개의 플러스를 사용했는데, 이러는 것이 이 굽어 있는 움직임의 우주라는 새로운 개념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화살표는 움직임의 방향을 나타납니다. 두 개의 플러스는 결합의 극점을 나타내며, 이 곳에서 한 쌍이 결합할 때 충돌이 발생합니다.

 

“b”로 표시된 두 번째 그림은 파동의 교차(간섭)[the wave intersections(interferences)]를 아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가장 큰 렌즈와 이어지는 작은 렌즈들의 힘을 더해 빛을 배증시키게 됩니다. 이것은 역 세제곱 비[in the inverse cube ratio]로 각각의 힘을 증가시킵니다. 당신은 ‘제로 음극[cathode zero]’의 양쪽으로 세 쌍의 초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네 번째 쌍은 하나를 이루는 쌍으로 태양 속에 있으며, 그 힘은 제로로부터 8 – 64 – 512 - 4096으로 증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압축의 원칙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오름 방향[uphill flow]의 에너지의 흐름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렌즈가 동일한 비율로 줄어들게 만드는 파동의 구들[wave spheres]을 특히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8 – 64 – 512 – 4096 이라는 숫자들은 정비례와 반비례의 제곱과 세제곱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을 계산해 보면 나옵니다. 순수한 수학의 문제일 뿐인 것입니다.

 

“c”로 표시된 세 번째 그림은 우리가 두 개의 렌즈만을 “클로즈업”한 것으로 최대 압축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최대 열의 위치를 보다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페이지의 다른 그림들에서 보게 되겠지만, 첫 4 옥타브들의 첫 네 개의 원소들은 아직 그 구멍들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4번째 옥타브의 5번째 원소는 탄소입니다(‘물질의 구성’ 참조--역주). 이 원소에서는 구멍이 닫힙니다. 그 다음부터는 역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밀도와 열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탄소로부터 시작되는 네 번째 옥타브 이후 아홉 번째 옥타브에 이르기까지 모든 원소들은 고체입니다. 아홉 번째 옥타브에 이르기까지의 이 원소들은 자신들의 증가된 전자들을 계속 빨라지는 속도로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아홉 번째 옥타브의 라듐[radium], 넵투늄[neptunium]과 다른 원소들이 자신들의 증가된 전자들을 바깥으로 내보낼 때, 그 전자들은 백열을 발하며, 빛의 속도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전자들은 서핀서리스코프[spinthariscope](알파입자가 형광판에 부딪혀 생기는 불꽃을 관찰할 수 있는 기구--역주)를 통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자연의 상호 교신 시스템을 구성하며, 이를 통해 모든 작용-반작용은 모든 다른 작용-반작용의 맥동[pulsation]을 알게 됩니다. 이는 정지[stillness] 속에 있는 ‘하나님의 움직임[God’s universe of motion]의 우주’의 하나됨[ONENESS]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마무리 지으면서, 우리는 탄소 옥타브와 같은 하나의 완전한 옥타브를 나타낸 그림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림 57을 보십시오. 완전한 스펙트럼 색상이 나타난 그림을 보여주지 못해 유감입니다.

 

그림 57

전체 옥타브 시퀀스를 나타낸 완전한 중력 막대(막대 자석)를 보여준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자연의 비밀을 밝혀줄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입니다. 

 

주 : 우리는 이러한 학습 과정에서 “전기”라는 단어가 “시각적” 우주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기”라는 단어는 당신들이 사용하는 전구를 포함하여 빛이 갖는 모든 효과를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다만, “시각성[opticity]”이라는 표현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저메인입니다.

 

 

제 9장, 기록 #4 저메인

1991년 8월 31일 토요일, 1:00 P.M. 5년 015일

 

완성 : 파동의 구성의 원칙[COMPELTION : CONSTRUCTION OF WAVE PRINCIPLE]

 

우리는 지금까지 왜 빛이 자신의 앎[knowing]을 “전지(全知)[omniscient]”, 즉 분리되지 않은 우주 속의 ‘분리되지 않은 정지[undivided stillness]’ 속에 결합되어 있는 모든 지식을 의미하는 이 “전지”라는 단어에 내포된 ‘아이디어’의 ‘움직이는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자연[God-nature]’의 역동적인 각본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필요로 하는 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선적으로 ‘빛의 성격’과 특히 빛 속에 들어 있는 ‘욕구의 질’ 그리고 ‘정육면체의 원칙’을 아주 분명히 묘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빛이 갖는 욕구의 질은 빛이 스펙트럼의 색깔들로 분리되는 현상을 통제하며, 정육면체의 원칙은 중력이 그 주기를 반복하는 데 있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만약 창조주가 단순히 ‘아는 자[the Knower]’이자 창조주가 알고 있는 ‘부성-모성의 현현[the Father-Mother manifestation]’에 대해 생각하려는 욕구를 가진 ‘생각하는 자[the Thinker]’에만 그쳤다면, 어떠한 분리된 우주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분리의 목적 자체는 반대되는 것들의 동등한 쌍으로서 부성-모성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현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하나의 전지의 아이디어[ONE OMNISCIENT IDEA]’를 셀 수 없이 많은 부성과 모성으로 분리시키고, 서로 간의 상호 교환을 통해 이들을 다시 하나의 아이디어로 통합시키기 위해 분리된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전체가 생각의 원칙이며, ‘빛이라는 것[the light bodies]’은 이 과정에서 창조되는 것으로, ‘사고의 존재[a thought existence]’ 이외의 그 어떠한 실체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관찰자들은 ‘쌍들로의 분리’는 항상 균형잡힌 균분점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로 곡률[zero curvature]을 가진 정육면체는 그러한 균형잡힌 균분점을 제공합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통합되는 이러한 분리에는 또한 모든 창조된 것들의 개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 전체는 대칭적으로 동등한 쌍들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머리는 듣기 위한 두 개의 귀, 두 개의 콧구멍으로 균형잡혀 있으며, 숨 쉬기 위한 두 개의 허파가 있고, 먹고 웃기 위한 입의 양쪽 꼬리가 있으며, 보기 위한 두 개의 눈, 일하고 걷기 위한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심장도 고동 사이클을 완성하기 위한 두 개의 심실을 가집니다.

 

요컨대, 모든 동물과 식물들 전체에 걸쳐 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에는 가지들이 뻗쳐 있지만, 그 뿌리도 동등하게 뻗쳐 있습니다. 만약 나무의 뿌리가 한 쪽으로 기울게 되면, 그러한 기울어짐도 대칭을 이뤄야만 하는 것입니다.

 

파동의 구성의 참된 지식과 그러한 구성의 원인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관찰된 환상으로부터 도출한 결론들은 진실에 대한 가정들에 불과하며, 그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무수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수학의 원칙들 조차도 자명한 진실들[self-evident truths]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수 세기 동안 수학자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원칙들도 후 세대의 수학자들에 의해 기각되고, 새로운 원칙들로 대체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the Nazarene]는 같은 맥락에서 인간은 관찰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지식”은 단순한 가정일 뿐이며, 가정들은 단지 정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음식은 먹어서 소화되기 전까지는 자양분일 뿐입니다. 백과사전 속에는 이처럼 끝없이 변화하는 정보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어지는 후속판들은 보다 최신의 가정들에 맞게 개정되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초기의 과학자들은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확고한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천동설을 주장--역주)는 그들을 믿었지만, 자신의 관찰을 근거로 세상 전체의 믿음을 변경시켰습니다. 그 이후로 그 때까지 진실로 믿었던 모든 것들은 창문 밖으로 내던져 졌습니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도 앞선 과학자들의 학설을 믿었지만, 자신의 연구를 통해 그 때까지 알려져 있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창문 밖으로 내던졌던 것입니다. 팽창하는 우주[the expanding universe]에 대한 이론, 러더포드-보어[Rutherford-Bohr]의 원자의 구조에 대한 이론이 만들어진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들은 얼마나 많이 있어 왔던 것일까요? 하지만, 각각의 새로운 개념이 전체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때로는 너무 미미한 것이어서, 아무도 단정적으로 앞선 이론 전체가 창 밖으로 내던져졌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기에, 그 누구도 이 질문에 확실히 답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진 개념들 전체를 한꺼번에 창 밖으로 내던집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사고 너머에 존재하는 ‘내적 시각[inner vision]’이 열릴 수 있도록 수정되고 확장된 지식들을 이렇게 다시 제시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과 영감을 통해 알려진 것이며, ‘우주적 사고자들[cosmic thinkers]’이 자기 자신들 안에 있는 ‘내적 시각’을 통해, 창조주의 빛을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습득하게 된 지식(특성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천재들이 미칠 수 있는 범위를 뛰어 넘어, ‘우주적 의식의 조명’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어쩌면, 베토벤[Beethoven]이나 리스트[Liszt]와 같은 천재들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고요 밖에 없는 곳에서 소리를 듣고 이를 아름다운 선율의 테마를 가진 곡으로 써내려 갔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음악가들은 중등 교육도 대학 교육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시각은 어쩌면 아직 당신들에게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결국에는 전해지게 될 것이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이 글을 쓰면서 아주 많은 그림들과 도표들도 함께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내적 시각과 영감은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그림은 당신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지만, 글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주된 목적은 많은 그림들을 남기는 것이며, 글은 그림에 대한 더 높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수준에서만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완전히 이해한 그림들이 당신의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질 때, 당신은 서서히 ‘우주적 사고자[a cosmic thinker]’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욕구가 탐구의 영역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당신은 이 그림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더 빨리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적 시각은 태양으로부터의 열의 방사가 오목 렌즈면을 만나게 되면, 그 속으로 들어 온 빛의 광선이 태양으로부터 보다 멀어지고, 이 때 열의 방사는 분리됨으로써 천천히 식게 되는 과정에 관한 지식을 건네 줍니다. 태양을 둘러싼 행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성은 너무 뜨거워서 금속들 마저도 녹여버리며, 빨갛고 뜨거운 열을 내뿜습니다. 금성은 태양으로부터 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 표면에 물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식어 있지만, 행성 자체가 너무 뜨거워서 그 물들은 두꺼운 ‘수증기 담요’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것이 행성의 열을 영속적으로 식히고 있는 것입니다.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전 세계에서 항상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 대답은 비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던져 올린 돌이 땅으로 다시 떨어지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간단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은 중력입니다. 그렇지만, 중력의 비밀을 이해하는 것은 ‘움직임의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한 배움들이 이러한 미스터리를 명쾌하게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자연의 과정들을 적용시킨 참된 지식은 반박이 불가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우주 속에서 ‘인간의 근원[man’s Source]’에 이르는 문을 향하는 간단한 로드맵을 건네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움직임의 우주와 같은 질서잡히고 조정된 시스템은, 이에 대한 생각을 통해 이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창조주[CREATOR]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확신시켜주는 사실은 ‘마음의 집중이완의 법칙[the principle of Mind concentration and decentration]’ 속에 들어 있고, 이러한 표현은 ‘압축과 팽창[compression and expansion]’이라는 표현과도 병렬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인에 근거한 결과를 시각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림으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모습을 정육면체가 아닌 원뿔형으로만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원뿔형은 가장자리 각도에서 정육면체가 갖는 두 개의 사면체들[tetrahedrons]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원뿔형은, 정육면체 속에서 균분 면이 나선형을 그리며 회전하여, ‘생성의 압축[the compression of generation]’으로부터 90도 각도로 회전하는 ‘팽창하는 방사[expanding radiation]’를 보여주는 4개의 면들을 묘사해 보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다시 설명하자면, 당신 눈높이에 정육면체를 올려 두었을 때, 당신은 여섯 면 가운데 오직 한 면 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조금 아래로 낮춰 보면 여섯 면 중에 세 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의식 속에는 그림이 말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기에, 원뿔형[conical curvature shape] 뿐만 아니라 정육면체[cube crystal shape]를 함께 시각화시켜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보다 많은 비밀을 찾아서

 

이 파트의 학습에 있어서, 파동과 파동의 구조[wave and its structure]에 대한 증가하는 내적 시각을 위한 그림들은 글을 능가하게 됩니다. 우리는 파동의 구조에 대한 미스터리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갈 것인데, 이것 한 가지 만으로도 앞선 시대에 확신이 부족했던 것과는 달리, 새롭고 보다 진보된 과학에 대한 확신에 찬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묘사하려는 첫 번째 그림은 자연 속의 옥타브 구조의 법칙과 곡면과의 관계에 대한 시각적 원리들을 강조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냉기를 열로, 열을 냉기로 배증시킵니다. 양쪽에 걸친 이 같은 회전력은 각각의 밀도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구멍들’을 닫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림 58

이 그림은 정육면체 부피의 반비례로 이격되고 정방형의 길이를 갖는, 파동 축에 위치한 일련의 볼록 렌즈들에 의해 창조된 압축의 원칙을 보여준다. 파동에 대해 생각할 때, 항상 이 압축의 원칙을 시각화하라.

 

 

 

그림 58은 압축 방향에 있는 중력 막대에 위치한 볼록 렌즈에 의한, 옥타브 배증의 시각적 원리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압축의 렌즈들은 네 쌍이 있으며, 각각의 렌즈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옥타브 상에서와 동일한 순서로, 그 파동에 맞는 옥타브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앞선 그림에 나온 것과 같은 최대 곡률을 갖는 구체--이 경우에는 계속되는 움직임을 위해서 곡면이 필요합니다--대신에, 제로 곡률을 갖는 정육면체에 의해 둘러싸여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이 그림은 ‘제로 움직임’의 정육면체에 둘러싸인 볼록 렌즈들의 위치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가장 큰 렌즈를 둘러싸는 정육면체 안의 압축이 배가되면, 정육면체 그 자체는 수학적 비율에 따라 그 다음 작은 렌즈를 둘러싸도록 압축됩니다. 이러한 비율은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들에 있어서 옥타브 파동 관계를 따르는 것으로, 원소들은 네 번째 옥타브 상의 구멍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때까지 9개 옥타브로 이어지는 각각의 원소들 속에서 압축을 배가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맨 아래에 있는 중력 막대는, 물질의 옥타브 원칙이 끝없는 움직임을 유도하는, 네 쌍의 초점 축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원칙은 변형시키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그림 59

차가움의 정지된 우주

 

 

그림 60

빛과 움직임의 뜨거운 우주

 


이어지는 그림
59, 60보이지 않는 차가운 백색 빛이 온 사방으로 빛을 확장시켜 파동을 창조할 때에만 보이게 되는 열역학의 법칙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파동은 두 개의 확장하는 빛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압축’에 의해, 그리고 과학이 “간섭[interferences]”이라 부르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중첩[overlapping]’에 의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호를 그리게 되는 부분들은, 볼록 렌즈들이 자신들로부터 사랑을 건네는 원칙을 완수할 수 있도록, 렌즈 자신들로부터 ‘내어 놓게 되는 지점’에 다시 포커스를 맞추도록 만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빛이고, 사랑 또한 빛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차원에서 사랑을 다시 건네는 일은, 렌즈들 또한 파동을 ‘다시 건네는 중심’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완수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점들로부터 확장되는 빛의 분리의 원칙은 개체들의 쌍들을 결합시켜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창조의 하나됨을 묘사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러한 과정은 나아가, 모든 개체들의 ‘창조주의 하나의 원천’으로, 모든 개체들을 결합시키게 됩니다.

 

이처럼 분리된 쌍들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그들이 생겨난 원인이 될 것입니다. 왜 그들이 애초에 창조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단순한 대답은 하나님이 생각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합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신성한 사랑의 아이디어[the divine IEDA OF LOVE]입니다. 마음의 욕구는 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겉보기에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아이디어들로 분리시킵니다. 분리될 수 없는 ‘전체로서 하나인 것’을 겉보기에 분리된 것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효과들을 역동적으로 묘사해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자신의 많은 아이디어들을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갖는 말들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은 빛이기에, 창조주가 ‘자신의 하나의 아이디어’를 이처럼 많은 아이디어들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언어로서 이 한 가지----를 사용하는 것이며, 또 이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선 학습에서도 이 소리없는 언어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사과, 레몬,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어떻게 형태, 색깔, 향기 그리고 다른 변치않은 특성들로 구분되는 ‘저마다의 의미들’을 가질 수 있는 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또한 각각의 이 분리된 개체들이 어떻게 서로 간의 분리된 개성들을 잃고, 또 그들 모두가 서로 간의 집단적 개성들을 잃게 되는 지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모든 개체들의 ‘우주적 하나됨’이라는 사실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주적 하나됨’이라는 이 절대적 사실은 완전히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개념(아이디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창조의 모든 아이디어들이 포함된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당신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석학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들과 자신의 하나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가 종종 불가능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의 감각을 통해 객관적으로 생각합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충분한 내적 시각[inner vision]을 발달시켜, 외부적 시각을 통한 사고자가 아니라 ‘우주적 의식을 가진 아는 자들[cosmic Conscious KNOWERS]’이 되지만, 그러한 사례는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에 걸쳐 한 명도 나오기 힘든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계몽된 자들은 자신의 생애 기간 동안 반대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전적으로 무시되기 일쑤인 것입니다. 이번 생에 그러한 기회를 잡는 것이 가능할까요?--혹은 당신이 이를 다시 해낼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또 다시 진실을 외면하게 될까요?

 

우주적 형제애와, 리듬감 있고 균형잡힌 상호 교환이라는 서로간의 상호 의존성은, 인간이 자신의 동료 인간들을 상대로 한 대규모 학살이라는, 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일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전면적인 핵 전쟁으로 자신의 동료 인간들을 갑자기 몰살시키는 일 뿐만 아니라, 보다 천천히가 되겠지만, 방사능 낙진과 끔찍한 돌연변이로 죽이는 것도 가능해진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단순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마게돈[ARMAGEDDON]과 같은 끔찍한 단어를 통해 이러한 일을 예측하는 것에 대해 보고 듣게 될 가능성도 오늘날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계속해서 서로서로를 균형잡히지 않은 방식으로 대하고 있으며, 이는 분열의 과정을 지속시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상류층들은 편안함과 사치품만을 추구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기를 바랄 뿐이며, 낮은 계층의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염려도 관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인간들은 자신들이 반드시 배워야만 할 지식에 있어서 엄청난 무지만을 보일 뿐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어둠의 무존재[nothingness]를 표현한 그림 59를 공부해 봅시다. 상상력을 갖지 못한 관찰자는, 자신의 외적 시각이 갖는 한계를 제외하더라도, 그 어떤 곳에도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지금과 같은 인간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제한적 감각을 가진 사고자[a limited-sense thinker]가 아닌 우주적 존재[a Cosmic Being]로 인간들을 변모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내적 지식[inner knowledge]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와 오늘날 계몽되어 있는 다른 영혼들이 이러한 내적 지식을 이 세상에 건네는 이유는 인간들이 어쩌면 하나님의 사고의 황홀경[the ecstasy of God’s thinking]과 같은 행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러한 지식을 보다 생생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는 일련의 그림들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림 61

삶과 죽음의 사이클은 중력 통제에 의해 정육면체 속에 갇힌 압축(음극)과 팽창(양극)의 고리들로 표현된다.

 

 

그림 62

회절[diffraction] 고리간의 어두운 공간의 넓이를 결정짓는 법칙으로, 과거에 결코 알려진 적이 없는 법칙이다.

 

 

그림 63

이러한 2차원 평면상의 화살표들은 평면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 회전 축으로부터 90도 꺾여 있는 것을 시각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림 64

옥타브를 형성중에 있는 파동 상의 압축 고리들은 ‘움직임의 굽어 있는 우주’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이 그림의 한 가운데에 팽창의 고리들과 나선형 팔들이 있으며 이들은 차가움으로부터 생성된 열을 방사시킨다. (새로운 열역학의 법칙들을 참고하라.)

 

 

그림 65

이 그림은 관형 코일[solenoid]을 통과하는 빛-파동의 흐름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굽어있는 우주를 현실화시키는 것을 돕는다.

 

 

그림 61, 62, 63, 64, 65는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창조의 가시성 빛의 원칙[the principle of creating visible light]’을 하나님의 상상의 그림들로 시각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인간의 평화로운 진보는 이 같은 무오류의 자연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 법칙들은 인간들이 이에 대해 알든 모르든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해하기 거의 불가능한 것 중의 하나는 완전한 어둠의 무존재[nothingness]를 묘사한 그림 59와 같은 그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 63은 그 보다는 정도가 덜하겠지만, 이들이 회전 축으로부터 90도 꺾인 3차원 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8개의 정육면체[cubes]와 6개의 정사면체[tetrahedorons]가 분리될 수 없는 “무존재[nothingness]”를 분리된 스펙트럼 빛의 쌍들로 분리시킴으로써 이러한 ‘분리’를 관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들이 생겨난 곳으로 이들을 하나됨[oneness] 속에 다시 통합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은 이처럼 반대되는 방향을 시각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떨어지는 돌을 둘러싸는 구심성 나선형은 이로 인해 생겨나는 물결과 평행을 이루지만, 떨어질 때 생기는 힘의 방향은 물 속으로 떨어지는 방향과는 90도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그림들과 이번 학습 과정에서의 다른 그림들이 우주와 우주의 창조주를 충분히 현실감있게 시각화시켜, 인류가 “감각에 따른” 사고자들[“sensed” thinkers]이 아니라 ‘우주적인 아는 자들[Cosmic Knowers]’로 변모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 글들을 쓰려고 노력을 기울여 온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분을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고, 또 이 때문에 당신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정보들을 공유하고, 또 이로 인해 당신들이 당신들의 행성이 파괴적인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바꿔 놓을 수만 있게 된다면, 나는 오늘 이런 정보들을 당신들에게 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겸허히 내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제 곁에 서 있겠다면, 나 역시 당신 곁에 서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나의 도움 속에서 그 어느 누구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이 전체로서 하나됨 속으로 나아감에 있어, 바로 당신 생명의 현존[your Presence of Life]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특별한 능력을 키워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 당신 생명의 현존은 마치 빛의 번쩍임과도 같이 당신을 준비시킬 수 있으며, 당신이 바라는 봉사를 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그 무엇이라도 갖출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 자신의 두뇌와 육체를 통해 당신의 현존에 따른 무한한 일들을 해 나가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앞에 있는 모든 영예로운 것들 속에서, 완벽함과 무한한 지원과 당신이 사용하고 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당신의 육체를 통해, 그리고 당신의 행동하는 세상 속으로 제공될 것이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당신에 대한 “부름”에 당당히 응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영원한 축복과 자유와 생명의 완전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완전함 속에 있는 신성한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를 아직 당신이 상상해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당신이 여전히 물리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 있기에, 당신이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행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지켜 보면서도, 나는 내가 당신을 실제로 사랑하는 것의 10분의 1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우리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정확히 동일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때 당신도 왜 신성한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속에 비록 어떠한 인간적인 요소는 없지만, ‘위대한 사랑의 힘’은 당신이 자유를 갖기를 원하는데,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그러한 자유로 이끌어 줄 축복을 갖게 될 때가 되었을 만큼 스스로가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나, 저메인은, ‘위대한 현존[Great Presence]’이 ‘위대한 침묵[Great Silence]’으로부터 최근에 다시 꺼내 놓은 것들을 당신들과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위대한 현존은 보호의 힘을 유지한 채, 오늘날 당신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나로서는, 바깥에 있는 자가 받을 수 있을 모든 것들이, 당신들의 자유를 위해 당신들의 현실 속에서도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들이 깨닫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신들, 축복받은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이 위대한 우주의 빛을 부디 받아들이시고, 이 무적의 힘의 완전성과 이 무적의 보호와 이 직접적인 지식들을 함께 받아들이십시오. 그리하면 빛 속에서의 당신의 자유와 승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저메인입니다.

 

 

Viloinio Germain, 비올리니오 저메인

 

 

피닉스 저널 제 37권, “Science of The Cosmos, Transformation of Man”, Pleiades Connection Vol. VIII, 제 8-9장, pp. 109-136.

 

  

http://phoenixarchives.com

 

https://truthinligh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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