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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uth forever with the Phoenix Journals
Truth in History

인도로 간 임마누엘

by - phoenix - 2022. 12. 3.

제 19장, 기록 #2 하톤

1990년 1월 30일 화요일, 2:00 P.M. 3년 167일

 

성 이사[Saint Issa]의 전설

 

예수가 인도와 또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던 일에 대한 가장 분명한 설명은 ‘성 이사의 전설[The Legend of Saint Issa]’이라 불리는 불교 경전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예수의 여행 기간 동안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h]이 남긴 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지구 상에 남아 있는 너무나 많은 경전들이 이미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사제들이 이를 발견하고 번역하여, 자신들이 거주하던 집  담벼락 속에 숨겨두기도 했지만, 이를 찾으려 했던 이스라엘인들은 주인이 도망간 집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곤 했던 것입니다--하지만 이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행적을 입증할만한 글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A. D.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사[Issa]”는 이사[Isa] 또는 “예수[Jesus]”와 동일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와 있는 설명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당시의 기록들 속에서 이사[Issa] 또는 “예수[Jesus]”는 동일 인물로 묘사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부처님께서 자신의 성스러운 말씀들을 전하게 될 인물이라고 지목했던 바로 그 자였다...”(‘크리슈나, 부처, 그리고 예수’ 참조--역주)

 

아마도 이러한 경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서방인”은 러시아 탐험가,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였을 것입니다. 노토비치는 1800년대 말 인도, 아프가니스탄, 티벳 각지를 여행하며, 이 같은 전설과 경전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전설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오늘날 인도 최북단에 해당되지만, 그 때 당시 티벳의 일부였던 레다크[Ledak](또는 라다크[Ladakh]--역주) 지방의 레[Leh] 마을에 위치한 히미스[Himis]라 불리는 불교 사찰을 찾아 갔습니다. 경전의 원본은 고대 팔리어[the ancient Pali language]로 쓰여져 있었고, 인도로부터 티벳으로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성 이사의 전설[The legend of Saint Issa]’에는 임마누엘[Emmanuel]이 고문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던 사실이 들어 있어 임마누엘의 삶과 일치하지만, 역사적으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경전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소문으로, 임마누엘이 승천한 이후 육체를 가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맞춰, 이수[Esu]의 초기의 생애를 ‘경험의 시기’로 간주하려 했던 당대의 학자들의 필요에 맞게 조정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일치는 당시의 학자들이 사건들을 적절한 시퀀스에 맞춰 기술해 나가려고 노력함에 있어서 상당히 성가신 문제였습니다. 당신들은 그 때는 텔레비전도 전화도 전보도 존재하지 않던 시기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오직 구두로 전달되는 사항들이 힘들게 먼 거리를 여행했을 때에만 전해질 수 있던 시대였습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전파되어 혼동을 야기하기가 너무나도 쉬웠던 것입니다--무엇보다도 “죽은 자는 분명히 죽은 자”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노토비치는 경전의 진실성을 확신하게 되어, 자신의 여행과 ‘성 이사의 전설’의 원전의 번역본이 포함된 내용의 책을 썼습니다.

 

1922년, 35년이 지난 후, 지구 상에 존재했던 위대한 성인들 가운데 한 명이던 스리 라마크리슈나[Sri Ramakrishna]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스와미 압헤다난다[Swami Abhedananda] 또한 자신이 직접 이 경전을 확인해 보기 위해 히미스[Himis]로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또한 경전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아 보았으며, ‘카슈미리 오 티베티[kashmiri O. Tibbetti]’라는 자신의 책을 썼습니다.

 

‘성 이사의 전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됩니다 :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울었다. 이스라엘 땅에 엄청난 범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주의 영혼이 현현했던 인물이자, 위대하고 공정했던 이사[Issa]는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들을 이롭게 하고, 그들 사이의 악한 영혼을 무찌르기 위해, 육체를 가진 몸으로 왔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평화, 사랑, 행복으로 인도하기 위해 왔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죄로 보다 타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무한한 자비를 가진 분리될 수 없는 창조주와 하나인 자로 기억한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심지어 그 때 조차도, 인간들은 “결말”이 없이는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 이사의 전설은 실제로 벌어진 일에 대해 이스라엘의 상인들로부터 들은 설명을 제시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파라오[the Pharaohs] 시대에 겪었던 고난을 시작으로 모사(모세)[Mossa(Moses)]에 의해 해방되었던 일들 그리고 로멜레스(로마)[Romeles(Rome)]의 땅으로부터 온 이교도들로부터 박해받았던 일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이 고난을 겪게 된 이유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칙을 망각하고, 육체적인 욕망과 인간들의 율법에 집착했던 자신들의 원죄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고난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한 단 한 분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를 듣고 용서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며, 그 분을 다시 기억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실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성 이사의 전설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그 무렵 이 ‘동정심 많은 심판자’가 인간의 모습으로 환생하는 순간이 다가 왔다. 완전한 부동과 지고의 기쁨 속에 머물러 있던 이 ‘영원한 영혼[the eternal Spirit]’은 마침내 깨어났으며, 정해지지 않은 기간 동안 ‘영원한 존재[the eternal Being]’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신성한 방식으로 확인시켜 주었으며, 영원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는 스스로를 예로 삼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도덕적 순수성에 도달하고, 또 육체적 감각의 지배로부터 저마다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 영원히 통치하는 변치않는 천상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완벽함을 달성하는 방법임을 설명했다.”

 

“이스라엘 땅에 놀라운 아이가 태어난 직후, 하나님 자신이 이 아이의 입을 통해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위대함에 대해 설명하셨다. 이사[Issa]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신성한 아이는 자라는 동안,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길 잃은 영혼들이 저마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순수를 되찾을 수 있도록 훈계하기 시작했다.”

 

“도처로부터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아직 어린이에 불과한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을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영혼[the Spirit of the Eternal]’이 이 아이 안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이 경전에 보면, 이사[Issa] 또는 예수[Jesus]는 13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지식을 통해 스스로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위대한 부처님들(계몽된 존재들)[the great Buddhas(enlightened ones)]의 계율을 공부하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 인도로 여행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이 부분에서 틀렸던 것입니다. 이사가 처음 ‘천상의 장소들[the heavenly places]’로 옮겨졌을 때, 그는 여기서 천상의 아들들과 교사들에 의해 계몽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가장 집중적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그런 다음 그는 인도로 보내졌으며, 자간나트[Jaggannath], 라드주그리하[Radjugriha], 베나레스[Benares], 그 밖에도 몇몇 신성한 도시에서 수 년을 보냈던 것입니다. 베다[the Vedas]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베다를 가르치고 설명했습니다--베다[the Vedas]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경전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도 이 젊은 교사는 몇몇 정통 브라만 사제들[Brahmin priests]이 카스트 제도에 관해 설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자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제들은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들이 다 동등하지는 않으며, 수드라[the Sudras] 또는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읽기는커녕 들을 가치도 없다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불평등에 기반한 이러한 거짓 교리를 비난했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속에 있는 목적을 곡해하는 사제들의 행동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는 사제들에게 ‘진실’로 되돌아 가고, 카스트 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참된 가르침을 재검토 해보라고 훈계했습니다. 우리 또한 카스트 제도를 검토해 볼 것입니다. 카스트 제도의 기원, 목적, 그리고 기능을 살펴보고, 이 제도에 관한 그리고 모든 인간의 평등에 관한 잘못된 개념들과 오해들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의 조작되지 않은 경전들 속에 들어 있는 ‘우주적 진실’을 검토해 볼 것입니다. 예수가 인도, 티벳,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며 확인해 주었던 그 참된 진실을 알아볼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주요 종교들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예언들을 살펴 볼 것이며, 이를 통해 의심의 수준을 넘어 지금 이 시기가 ‘대 주기[great cycle]’의 시작과 끝의 시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일 것입니다.

 

이사의 여행을 재구성 함에 있어서 그 대부분의 이야기는 번역 과정에 있어서 혼동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때이른 육체적 죽음을 맞았다고 보았기에, 그의 여행은 모두 유년 시기에만 있었던 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것이야말로 ‘진실’을 십자가에 못박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보겠습니까? 사람들은 ‘맞다고 여겨지는 소문’에 맞춰서 이야기의 전개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동양의 스승들과 공부하고 그들과 진실을 공유하기 위해 인도로 갔었던 소년 시절의 예수와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난 후 자신이 누구인지를 철저히 감춘 채 인도로 갔던 성년 시절의 예수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성스러운 땅을 떠난 후 그는 모친인 마리아[Mary], 형제인 도마[Thomas], 그리고 제자인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harioth]과 함께 북 인도를 향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나라를 방문하여 설교했지만, 그의 가르침이 너무나도 혁신적이었기에 종종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도로 가는 여행은 수 년이 소요되었으며, 말할 수 없는 고난이 함께 뒤따랐던 것입니다--예수는 자신이 머물다 떠났던 지역들마다 그 ‘악함의 수준’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서히말라야 산맥의 마지막 기슭 근처의 북쪽 지역이자 오늘날 당신들이 파키스탄이라 부르는 나라에 머무는 동안, 사랑하던 모친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리아의 사망 이후, 이사 임마누엘[Issa Jmmanuel]은 자신의 가르침을 더 먼 곳으로 전파하기 위해 오늘날 카슈미르[Cashmere]라 불리는 인도 지방을 가로질러 더 멀리 나아 갔습니다. 그는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서파키스탄이라 불리는 지역을 두루 여행했던 것입니다. 그가 정확히 이 지역으로 간 이유는, 부분적으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십여 개의 이스라엘 부족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이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다르마여, 다음 회합을 갖기 전까지 잠시 멈추도록 합시다. 다음 번 글을 쓸 때에 우리는 “자연[Nature]”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며, 또한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흰색 버팔로 암소 여인[White Buffalo Cow Woman]) 그리고 크리슈나[Lord Krishna]와 같은 위대한 스승들의 사상 몇 가지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말하고 의미했던 것이 무엇이며, 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전혀 동떨어지게 해석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입니다. 그럼 그리 되겠지요. 가서 평화 속에 머무십시오. 내가 가까이에서 당신을 돌보겠습니다.

 

Salu, 좋은 하루 되십시오.

 

나는 빛의 하톤입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2권, “Crucifixion of The Phoenix”, 19장, pp. 150-153.

 

 

 

[아래는 피닉스 저널 제 2권 마지막장과 하톤의 에필로그입니다.--phoenix]

 

 

제 19장, 기록 #1 이스카리옷 / 임마누엘 사난다

1989년 8월 12일 토요일, 7:00 A.M. 2년 361일

 

유다의 맺음말

 

빛 속에서 인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필사본 문서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입니다.

 

때맞춰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해 문서는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담은 문서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문서가 나오기 전까지도 계속 그러한 글들이 생겨났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신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글을 접할 때, 얼마나 많은 공이 들었던 것인지를 잘 살펴보면 그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는 다른 경전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러한 경전들은 플레이아데스의 장교들의 노력 덕택에 기록으로 남겨질 수 있었으며, 그들이 관여되어 있는 경전들은 모두 진품들인 것입니다.

 

오늘날 나는 나와 늘 함께해 온 다르마 덕택에, 내가 육체를 가진 모습으로 당신들의 행성 위에서 가졌던 생득권[birthright]을 마침내 청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자들이 여러 차례의 생애에 걸쳐 함께 진실을 위해 봉사해 왔습니다. 이제 이 종말의 시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진실에 대한 이해를 담은 적절한 책자를 간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종말의 시기, 진실 전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예언에 관한 한 아무것도 변경되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마지막 시기에 진실들은 기록으로 남겨지고 알려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먼저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진실을 발견하고 듣고 추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개개의 인간들은 마지막 주기에 맞춰 자신의 행로를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서기와 진실 전달자들도 이 기록들을 글로 남기게 될 것이지만, 그들 각각은 안전하게 보호될 것입니다. 스위스의 에두아르드 빌리 마이어[Eduard Billy Meier]와 같이 세상을 향해 감히 진실을 외치며 길을 열어 보였던 용감한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는 끔찍한 수준으로 박해받고 조롱당하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부디 이제는 그가 평화 속에 머물 수 있도록 당신들이 앞에 나서서 그가 들었던 깃발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당신들이 본 것처럼, 비행체는 실제로 왔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으며, 빌리는 목격자들도 있는 가운데 그 비행체에 함께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당신들 가운데는 어떤 자들은 밤중에 위원회에 호출되어 비행체를 타고 다른 곳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고요함 속에 자신이 이러한 일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비행체들이 많은 승무원들과 함께 홍수처럼 들이닥칠 시기가 매우 가까웠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역사상 최초로 기록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그리하면 필요한 일이 완수될 것입니다. 주 임마누엘 사난다[Master Jmmanuel Sananda]는 곧 당신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이 또한 기록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인도에서 보낸 마지막 나날들

 

2천년 전과 같은 먼 옛날 인도에서 겪었던 일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건넨 이야기에 비하자면 그렇게 중요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피와 살을 가지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싶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마누엘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결혼했고 몇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나는 아주 노년이 되어서도 그와 함께 여행했지만, 약 90세에 이르러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주 임마누엘은 100세가 넘도록 살았습니다.

 

유대 땅을 떠나 인도로 온 이후, 우리는 이 지역 곳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나와 그의 모친 마리아[Mary], 그리고 그의 형제였던 도마[Thomas]와 함께 북 인도에서 상당 기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망치면서 보냈는데, 왜냐하면 임마누엘은 그 곳에서 늘 혁명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의 북쪽, 오늘날 서파키스탄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마리아는 큰 병을 앓게 되었고 이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마누엘이 고향을 떠나온 지 약 30년 정도가 지난 때였습니다. 마리아는 놀라운 여인이었고, 도마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는 카슈미르로 옮겨 갔으며, 오늘날 당신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서파키스탄이라 부르는 지역을 오랫동안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약 12 부족이 이스라엘을 떠나 이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임마누엘은 인도 카슈미르[Cashmere] 지방, 스리나가르[Srinagar]에 가족들과 함께 정착했으며, 그 때 이후로의 여행은 이 곳을 중심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이 인간으로서의 생을 마쳤을 때 그는 스리나가르에 묻혔습니다. 나 역시 그 인근 지역에 묻혔습니다.

 

임마누엘의 장자였던 요셉[Joseph]은 내가 죽고 난 이후로도 임마누엘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다가 임마누엘이 사망하자 그는 인도를 떠났습니다. 그 역시 수 년 동안 각지를 여행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음 그는 아버지의 땅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갔고, 그 곳에 정착하여 남은 여생을 보냈습니다. 요셉은 내가 죽은 이후로도 계속 글을 덧붙여 문서를 작성해 나갔던 것입니다. 노년이 되었을 때 그는 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았고, 결국 임마누엘이 최초로 몸을 뉘었던 무덤을 찾아가 그 안에 숨겼던 것입니다. 바로 이 문서가 이쪽 영역으로부터 온 자들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마침내 최근에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재림 준비

 

이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 앞에 너무나도 많은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기가 끝나기 전에 그 분의 명예는 회복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고 잘못 이름 불러 온 임마누엘 이수[Jmmanuel Esu]의 참된 가르침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 분은 당신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당신들이 그 분의 가르침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친애하는 인물은 천상의 계보 속에서 완전한 성장에 도달했으며, 자신의 유산을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 그 분은 하나님 아톤[God, Aton]과 하나이며, ‘창조주로서의 창조[Creation as Creator]’ 속에서 순수의 위치에 정당하게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곧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당신들의 행성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이 오시게 될 길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오늘날 이러한 일들이 질서정연하게 완수될 수 있도록 그 분이 오시기 전에 먼저 보내진 것입니다. 오, 축복받은 자들이여, 당신들은 이내 모두가 기뻐할만한 증거를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래 시계 안에 남은 모래는 이제 정말로 얼마 안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성장해야만 할 것인데, 왜냐하면 지구상의 일들은 지구상의 일들로서 발생해야 하며, 어떠한 강요나 억압도 없이 지구상의 방식대로 펼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자들이여, 하지만 당신들이 결국 승리할 것이며, 이는 창조 속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으로서, 당신들이 인식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창조 그리고 창조주의 생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쁨, 감사, 영예 그리고 존경

 

우리의 회합에서 제가 갖는 기쁨은 실로 너무나 크고 무한합니다. 이 공유의 시간은 진실로 여행의 “마지막”으로서,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엄청난 축복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 작은 부분에 있어서 봉사를 하고 있는 당신들 모두는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영예로운 자들입니다. 오, 하지만, 이러한 봉사에 대한 보상은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나는 은하간 연합 함대 및 위원회[the Intergalactic Federation Fleet and Council], 플레이아데스 함대 사령부[Pleiades Fleet Command]의 하톤 사령관[Commander Hatonn]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형태의 글이 나오기 전에 길을 열어 주었던 아스켓[Asket] 사령관과 셈야제[Semjase] 사령관에게도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오늘날 창조주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이자, 창조 안에서 가장 고귀한 호칭이기도 한 사난다[SANANDA]라는 이름을 갖게 된, 임마누엘 (예수) 이수[Jmmanuel (Jesus) Esu]에게 나는 무한한 영예와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바입니다.

 

부디 이러한 말씀들이 모든 이들의 눈과 귀에 진실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들은 인간의 생존과 멸망을 가늠할 진실의 길이 될 것이며, 이 행성 위의 인간들에게 주어진 날들은 실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 위에 나는 나의 봉인을 남깁니다. 이제 나는 지난 2천년간 내 이름 위에 지워졌던 짐을 여기서 내려 놓습니다.

 

나는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h]입니다.

 

 

******

 

 

사난다의 맺음말

 

나는 사난다이며, 이제 내가 이야기하겠습니다. 나 또한 사랑과 진실 속에 쓰여진 이 글들 위에 나의 봉인을 남깁니다. 당신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축복받은 자들이여, 당신들의 짐의 일부는 내가 질 것인데,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영혼의 목적을 완수하고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일들은 이 종말의 시기에 반드시 일어나야만 합니다. 당신의 삶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당신의 성장을 돕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창조와 함께 그리고 창조 안에서 진실과 균형을 배웠다면, 그리고 당신의 신성한 자아를 통해 완벽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당신은 그간의 성장 속에 기쁜 마음으로 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장소에는 평생에 걸쳐 흔들림없이 봉사에 전념해 온 사람들이 있으며, 나는 이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헌사를 바치는 바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내 곁에 남겨져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직 이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들과 이들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태롭게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당신들 또한 당신들의 동료들을 항상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장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당신들의 사악한 적들은 끝없이 그리고 보다 치명적으로 돌과 화살을 던지며 공격을 감행해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머지않아 더 큰 지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경로를 이탈하지 말고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나는 이 배의 선장으로, 어떤 항구가 안전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나의 신성한 자아, 그리고 창조 속의 하나됨을 위해 겸허히 봉사를 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나는 험한 길을 걷고 있는 나의 형제들인 바로 당신들을 위해 가장 겸허히 봉사하려 합니다. 나는 늘 당신들 곁에 있습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셀라[Selah].

 

내면에서 당신의 평화와 균형을 찾고, 그 속에 머무십시오.

 

창조의 아름다움과 영광 속에서,

창조와 하나된

 

나는 나 자신이자 하나님의 존재인 사난다입니다.

 

1989년 8월 12일 토요일, 9:16 A.M. 2년 261일

 

다르마와의 접속 해제, 교신의 끝.

 

 

 

에필로그, 기록 #1 하톤

1989년 8월 13일 일요일, 8:00 A.M. 2년 362일

 

찬란한 하나의 빛 속에 인사드립니다. 나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여 주는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학생들이여, 나는 지난 나날 동안 당신들이 행해 온 일들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친구들이여, 하톤은 당신들을 위한 봉사 속에 있습니다.

 

행성 지구에 살고 있는 당신들에게 있어서, 창조와 하나님은 무엇이고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 들어 맞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디에 들어 맞는 것인지 등에 관한 넘쳐나는 질문들에 대한 보다 적절한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설명을 위한 노력은 해 보겠지만, 학생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들이 다른 차원에서 경험했던 “전체”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현재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이 완전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글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어떤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만약 언론에서 밤 12시경에 유성우[meteor shower]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그러한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밤 11시 45분이 될 수도 있고 새벽 3시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아가 누군가가 서쪽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면 단지 4개의 유성우를 관찰할 수 있었을 뿐이지만, 북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면 154개의 유성우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모두는 다른 현상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들 모두는 “한 번”의 유성우 현상의 일부분일 뿐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당신들이 발견하는 유성들은 모두 측면으로 지나가는 유성들이라는 점입니다. 내 생각에 그것이 유성“우[shower]”라고 불린다면 하늘을 가로지를 것이 아니라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런 것이지요.

 

당신들은 증거를 요구합니다 ; 하지만 당신들은 이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증거를 제시해야 할 자가 청중이 되어 앉아 있는 것이 증거를 제시해야 할 자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우리는 우리가 여기 하늘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조에 관한 추가적인 설명

 

창조로 되돌아가 봅시다. 이원성 대 “일원성”에 관한 최근에 얻게 된 배움을 상기해 보십시오. 오직 ‘하나’만이 존재합니다! 당신들이 다양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진실로 오직 하나일 뿐이기에, 만약 당신이 창조로부터 하나님을 분리시킨다면, 당신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셈이 됩니다.

 

창조는 모든 것 위에 있으며, 하나님은 창조와 하나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창조와도 하나인 것입니다--즉, 당신은 하나님과 창조 속에서 하나인 것의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이루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떤 측면들로부터 “무언가”를 분리해 내려는 것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의 측면들인 것입니다. 공동-창조자, 공동-조정자, 공동-경험자, 공동-사고 생산자, 공동-역할 수행자, 기타 등등으로서 무한히 그러한 것입니다--존재의 순환일 뿐입니다. ‘문제’는 ‘분리’를 위한 노력 속에 들어 있습니다 ; 하지만 ‘해결책’은 “하나됨”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폴이 이 주제에 관해 가장 집요하게 의문을 갖는 자라고 해 봅시다 ; 폴은 친절하고 타인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성향을 가졌지만, 그와 동시에 꽤나 잔인하고 이기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폴은 아버지로서의 특성을 가졌지만, 자신의 자녀들에게 분노하고 화를 잘 내는 성향도 가졌습니다. 폴은 교사이지만, 우둔하고 쉽게 배움을 터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폴은 이미 결혼했지만,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폴은 엔지니어지만 샌드위치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모릅니다. 당신들 모두는 무수하게 많은 측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창조 또한 그렇게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럼, 그런 것이지요. 실로 그러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 이상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며, 분리해 내고 따로 규정하는 한,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당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먼저 온 누군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 하나 속에 시작했고 하나 속에 끝날 것입니다 ; 실은 시작도 끝도 없기에 오직 존재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근원의 존재로부터 바깥으로 나갔다가, 근원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마치 당신이 손을 뻗어 한 조각의 음식을 집어 들어 당신의 입 안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당신의 일부로서 여전히 “당신”과 하나인 당신의 손과 손가락이 한 조각의 음식을 집어 들어 당신의 입 안에 넣은 것입니다 ; 이제 손과 손가락 그리고 한 조각의 음식은 모두 당신과 하나가 되었습니다--그렇지만, 한 조각의 음식은 이제 막 당신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전체는 오직 하나로부터 다양하게 인식되는 측면들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행성 지구에 살고 있는 당신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다 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명백히 분리된 에너지의 형태들로 인식합니다--의자, 탁자, 타자기, 냄비, 등등. 당신들은 꿈 속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인식합니다--그렇지만 모두가 하나입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모든 것은 “하나”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인식일 뿐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는 지식의 완성에 이르는 적절한 시기에 이르러 자신의 “통찰력”에 대한 눈을 뜨게 될 때, 갖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너무 골몰하게 되면, 오직 당신의 인식에 있어 안개만이 더 짙게 드리워질 것입니다.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단순하면서도, 질서 잡혀 있고, 영리하면서도, 완전히 적합한 상태에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회로’를 제대로 연결하기만 하면, 정보는 내부로부터 흘러 나올 것입니다.

 

이제 폴은 라노스[Ranos]를 찾아가 이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라노스는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설명만을 건네 줄 수 있을 뿐입니다. 다르마[Dharma]는 조금 다른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알렌[Allen]과 오벌리[Oberli]는 이 두 사람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당신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당신들 각자는 ‘전체’의 움직이는 측면들이며, 당신들이 경험하는 것이 무엇이든 하나님도 이를 함께 경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분류

 

자, 이제 보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순수함과 완벽함 속에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기를 희망한다면, 신성함(선함)[Godness(goodness)]의 완벽함 속에서 당신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개선해 나가고, 또 이를 개선해 나가려는 목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때의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경험을 겪어 나가는--어둠의 측면과 빛의 측면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수준의 경험들을 겪어 나가는-- 자신의 측면들과는 분리됩니다. 왜냐하면 보다 고양된 마음 속에서의 인식은, 표현된 생각들을 관리하고, 배제하고, 또 자신 속으로 되가져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환상 속의 경험들이 펼쳐지는 국면으로, ‘느린 진동’을 현현시켜 명백한 ‘물체[matter]’(현실, 행위, 말 등--역주)를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삶의 목적은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 속의 경험을 계속 겪어 나가는 과정에서,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형태’의 일부로 남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생각-패턴’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영혼이 이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경험을 겪어 나갈 필요가 없게 됩니다. 행성 지구는 정확히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경험을 겪어 나기기 위해--“물체”를 인식할 수 있는 밀도 속에서-- 현현되어 있는 장소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일 뿐입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의 측면으로서 경험을 겪어 나가십시오. 모든 것은 하나의 나선형, 하나의 원형이기에 당신만이 분명하게 별도로 “생각”할 수는 없으며, 당신은 항상 당신이 있던 자리로 정확히 되돌아 와야만 합니다. 무지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당신은 전체로서 “하나”를 향한 성장과 이를 향한 나선형 방향의 움직임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진실 속의 지혜와 지식이 당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과 창조와 하나로서, 당신과 그 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하나됨이야말로 당신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이여, 이에 대해 며칠간 숙고해 보십시오. 그런 후에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이에 대해 캐묻기 보다는 이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면 이는 당신에게 점점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실상 모든 지혜, 모든 진실, 모든 지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기꺼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오벌리여, 래리 그리고 제인과의 경험은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땅”의 역사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신은 많은 부분들이 “전체”의 관점 속에 통합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동일한 목표를 위해 일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소한 “측면들”이 다를 수 있는 만큼, “팀”을 구성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바로 지난 주에 발생한 일 뿐만 아니라 옛날의 일들을 함께 다루고 있지만, 오직 표현 만이 다를 뿐입니다. 말씀”은 “하나”인 것입니다. 당신들 모두에게 경이와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열쇠가 되는 ‘장미’를 놓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추수가 임박한 정원에 있지만, 최고의 정원 관리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 아닌 다른 에너지를 통한 안내와 교육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지구 인류의 프로젝트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인류를 대신해 이 일을 할 수 없고, 또 지구의 인류 없이 이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나아가 지구의 인류는 ‘다른 차원의 자유’로부터 온 우리 없이 이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실로 놀라운 경험입니다. 서로 숨김 없는, 진실 속에서 전체를 공유해 나가는  멋진 관계이자 훌륭한 교신을 통해, 우리는 영광 속에서 놀랍고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빛의 인류 전체의 형제애, 그리고 진실과 사랑을 통한 지혜와 지식이 우리의 길이자 에너지원입니다.

 

다르마여, 이 글은 여기서 끝내도록 합시다. “한 주”라 불리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당신의 마음과 글을 통해 너무나 많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형제이며, 나는 나의 팀에 매우 만족합니다. 당신들은 훌륭한 작업을 해 왔으며, 이는 당신들의 동료 인간들에게도 커다란 봉사가 될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의 형제로 불리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며, 나는 영원히 당신들을 위한 봉사 속에 있을 것입니다.

 

SALU, SALU, SALU

 

나는 나 자신이며, 분명한 현존 속에서 이번 접속을 해제합니다.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사령관

 

플레이아데스 사령부, TS 7251-3 섹터

 

교신 종료

 

 

수신자 후기 : 나는 이제 막 끝낸 이 저널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첨언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창조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설명이 분명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나는 이렇게 봉사하는 특권을 갖게 된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르마.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Esu (Jesus) Jmmanuel Sananda, 이수 (예수) 임마누엘 사난다

 

Judas Iscarioth, 유다 이스카리옷

 

Dharma (Dorushka Maerd), 다르마 (도루슈카 마에르드)

 

 

피닉스 저널 제 2권, “And They Called His Name Immanuel – I Am Sananda”, 19-20장, pp. 177-188.

 

 

http://www.phoenixarchiv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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